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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성남교회 Church In Seongnam &amp;gt; 성도간증 &amp;gt; 성도간증</title>
<link>https://churchinseongnam.kr/bbs/board.php?bo_table=testimony</link>
<description>성남에 있는 교회 Church In Seongnam
*교회 중보기 도항목
- 회복 안의 모든 성도들의 참된 제사장 직분의 회복을 위해
- 남한 땅에서 만 명의 다음 세대 제사장들을 일으키시기를
- 남한에 있는 모든 교회들이 새 길을 실행하여 새로운 부흥에 이르도록
- 북한 땅에 왕국 복음이 확산되도록</description>
<language>ko</language>
	<item>
	<title>32 긍휼로 시작해 넘치는 은혜로 마쳤던 성남 '형제의 집' 생활기</title>
	<link>https://churchinseongnam.kr/bbs/board.php?bo_table=testimony&amp;wr_id=49</link>
	<description><![CDATA[저는 회복 2세인 대학원생 형제입니다. 저는 그동안 주님 안팎에 있으면서 삶의 굴곡이 많았던 것 같습니다. 어려서는 부모님 따라 교회생활을 잘 하다가 중학교부터는 공부한다고 멈추었고, 고등학생이 되어선 공부가 힘드니 다시 돌아오고, 그 기간 주님의 긍휼로 하나님을 역동적으로 체험했지만 대학생 때는 세상과 어울리다가 자신도 모르게 교회생활을 떠나고, 대학 중반에는 세상에 방탕한 삶이 질려서 다시 돌아오기를 반복했습니다. 이후로는 훈련과 대학원 사이에 진로를 고민하였지만 보편적인 길인 대학원을 결국 선택하게 되었고 대학원을 들어온 뒤부터는 교회생활을 떠나지는 않았지만 오랜 기간 동안, 또 현재까지 고난과 시련의 과정을 통과하고 있습니다. 사실 대학원이 이렇게까지 어려운 과정은 아닌데 힘든 것을 보면 당시에 주님으로부터 온 훈련에 대한 부담을 외면했던 것 때문이 아닐까 마음 한 편으로 생각해 봅니다.<br/><br/>학업으로 많이 방황하고 있던 중에, 저는 파견 근무로 짧은 기간 성남에 오게 되었습니다. 당시 회사에서 연락을 받았을 때는 기쁘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걱정이 앞섰습니다. 왜냐하면 회사가 성남에 오기 보름 전에 연락을 주었고 근처엔 집세가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으로 높았기 때문입니다. 마음은 급하였는데 주변은 갈 만한 곳이 없었습니다. 다행히 형제자매님들께 도움을 구하던 중 성남에 &#039;형제의 집&#039;을 알게 되었고 자리 한 개가 남아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039;형제의 집&#039;은 최상의 조건을 갖춘 곳이었습니다.&nbsp; 1) 방이 3개가 되는 집에 집세는 관리비 밖에 내지 않고, 2) 역에 가는 시간을 합쳐서 회사까지 총 20여분 밖에 걸리지 않고, 3) 미리 살고 있는 형제들의 도움을 받을 수 있어 적응하기가 쉬웠습니다. 본래는 아니겠지만 제가 들어갈 때에 특별한 긍휼을 입어 간단한 절차로 입소하였습니다. 일정이 촉박하였기 때문에 불과&nbsp; 일주일 전에 봉사자 형제님께 연락드렸는데, 곧바로 받아주셔서 예정된 날에 정상 출근할 수 있었습니다. 이후로도 &#039;형제의 집&#039;에 있었기에 성남에서 무사히 지낼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주님과 도와주신 형제자매님들께 정말 감사합니다.<br/><br/>회사는 처음부터 마음을 독하게 먹고 시작하였습니다. 왜냐하면 지금 하는 일이 학위 취득과 연계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일은 뜻하는 대로 되지 않았고 좌절을 많이 겪었습니다. 처음엔 선임과 할 일을 조율하는 데 시간을 많이 허비하였고, 두번째로는 일하는 방식을 교정 받는데 시간을 소비하였으며, 셋째로는 일의 결과를 책임지는데 많이 힘들었습니다. 왜냐하면 그 끝이 좋지 못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배움이 있었습니다. &#039;형제의 집&#039;에 있던 책에 써 있던 문구가 떠오릅니다. “우리의 일의 시작은 하나님의 뜻이고, 일의 추진은 하나님의 능력이며, 일의 결과는 하나님의 영광이어야 한다”. 이제 와서 되돌이켜보면, 회사에서 일이 제대로 되지 않았던 것은 주님을 중심삼지 않고 그 일을 주님과 하나되어 진행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주 예수님께서 우리의 푯대와 길과 상이 되셔야하는 데 다른 것을 취했던 것 같습니다. 지난 아침부흥 말씀처럼 크고 작은 모든 일을 주님의 이름 안에서 해야 한다는 것을 느낍니다. 더 훈련하고 더 배우기를 원합니다. 어떤 것을 해야 할지 모를 때에는 “주님, 어떤 것을 해야 합니까?”라고 묻고,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를 때에는 “주님, 어떻게 해야 합니까?”라고 묻고, 왜 해야 하는지 모를 때에는 “주님, 이것을 왜 해야 합니까?”라고 물어보기를 원합니다. 과정을 거치시고 완결되신 삼일 하나님이신 그 영께서 항상 우리 안에 살아계시고 운행하시며 내주하신다는 사실이 얼마나 큰 특권인지! 그분과 함께 그분을 통해 일을 할 수 있기를 원합니다.<br/><br/>개인적인 주님에 대한 체험과 누림에 이어 성남에서의 교회생활은 아주 제게 특별하였습니다. 저의 옆방에도 소그룹에도 복음서원에 다니는 지체들이 계시고, 집회소에도 복음서원이 있어서 사역의 말씀을 통해 주님으로 가득 채워지는 생태 환경에 계신 지체들이 다수 있었습니다. 형제자매님들과 교통하며 영적인 배움을 많이 받았던 것 같습니다. 또한 대학청년부 지체들이 활력화되어 함께 모이고 추구하고 찬송하고 누릴 때 함께 동참하여 그 흐름에 뛰어들 수 있었던 것도 아주 큰 힘이 되었습니다. 이외에 영어권 지체들이 모이는 집회에서 많은 공급을 받았고, 아침 활력 그룹에서도 공급을 받았으며, 교회 안의 많은 섞임과 교제로 형제자매님들의 목양 또한 감사하게 받았습니다.&nbsp; 몇 분은 회사에까지 찾아오셔서 목양해주시기도 했습니다. 아마 지체들의 도움이 없었더라면 주님을 추구하고 사랑하고 체험하고 누리는 데 어려움이 있었을 것 같습니다. 주님의 풍성을 넘치도록 공급해주신 지체들이 있음을 감사합니다. 마지막에는 주님께서 란 캥거스 형제님을 통해 공급해 주셨습니다. 앞으로 대학원에 다시 돌아가서는 이 모든 환경을 예비하신 하나님을 더욱 사랑하기 원합니다. 우리에게 맏아들의 형상을 이루시려는 그분의 목적에 따라 부름받은 이들에게 모든 것이 협력하여 선이 이루어질 줄을 알기 원합니다. 또한 우리를 사랑하시는 그분을 통해 넉넉히 이길 줄을 믿기 원합니다. 그분을 향하여 살고, 그분 안에 발견되고, 그분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며, 그분의 목적과 온전한 뜻을 따라 살도록 더욱 훈련되게 하소서! 주님께서 안배해주신 짧지만 넘치는 은혜가 주어졌던 성남 교회 생활로 인해 감사합니다! (W. S br)<p><a href="https://churchinseongnam.kr/bbs/view_image.php?fn=%2Fdata%2Ffile%2Ftestimony%2F3076750353_P1QAhd3C_cc4cbe004cc7bad8b0e7e1908d157aa4d6746389.jpg" target="_blank" class="view_image"><img itemprop="image" content="https://churchinseongnam.kr/data/file/testimony/thumb-3076750353_P1QAhd3C_cc4cbe004cc7bad8b0e7e1908d157aa4d6746389_600x450.jpg" src="https://churchinseongnam.kr/data/file/testimony/thumb-3076750353_P1QAhd3C_cc4cbe004cc7bad8b0e7e1908d157aa4d6746389_600x450.jpg" alt="" class="img-tag img-tag "/></a></p>]]></description>
	<dc:creator>청지기</dc:creator>
		<dc:date>Mon, 19 Jun 2023 09:34:11 +0900</dc:date>
	</item>
	<item>
	<title>31 나와 동행하신 하나님</title>
	<link>https://churchinseongnam.kr/bbs/board.php?bo_table=testimony&amp;wr_id=48</link>
	<description><![CDATA[지나간 날을 돌이켜 볼 때 주님께 감사한 것은 주님께서 매 순간 저와 함께 하여 주셨다는 것입니다. <br/><br/>어릴 때 살던 곳에 큰 예배당이 있어 누님들과 같이 침례교회에 다녔고, 초등학교 때 이사한 곳이 신학교 근처라 주위에 예배당이 많이 있어 자연스럽게 친구의 전도로 장로교에 다니게 되었습니다. 고등학교때까지 예배당에 착실히 다니며 말씀도 외우고 복음도 전하는 신앙생활을 하였습니다. 대학과 군대를 거치는 동안 신앙생활은 멀어졌지만 다행히도 회사에 입사하여 좋은 동료를 만나 신우회에서 다시 신앙생활은 이어졌습니다. 그러나 말씀의 깊이는 없는 거의 선데이 크리스천의 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에 기독교 배경이 있는 아내를 만나 집 근처에 있는 장로교에 다니게 되었고 다시 신앙생활을 회복하게 되었습니다. 주님은 이렇게 뒤에서 계속적으로 지켜보시고, 동반자들을 붙여 주시며 그분의 보호 안에서 함께 동행하고 계셨던 것이었습니다. <br/><br/>시간이 흘러 무리한 회사일로 인하여 큰 병을 얻게 되었습니다. 이 시간만큼 주님께 매달려 본 적이 없었습니다. 일 년 동안 병원을 다니며 치료를 받고, 주님께 구하며 지내는 동안 세상적인 행동들은 하나하나 떨어져 나갔고 세상적인 친구들과 만남도 끊어지게 되었습니다. 비록 몸은 아팠지만 마음은 평안했고 건강도 점차 회복이 되었습니다. 어느 날 주님과의 깊은 만남도 갖게 되었습니다. 갑자기 주님께서 저에게 찾아오셨고 많은 눈물과 깊은 회개가 쏟아져 나왔습니다. 그때 주님의 살아 계심을 주관적으로 느낄 수가 있었습니다. <br/><br/>주님의 긍휼과 은혜로 주님의 회복을 접하면서 또 다른 세상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성경 지식이 별로 없어서 어렵기도 하였지만 말씀의 깊이가 달랐습니다. 기독교 안에 얼마나 말씀이 왜곡되었는지도 알게 되었습니다. 기회가 있어 교회 방문을 하게 되어 섞임을 갖게 되었는데 그들의 교회생활과 분위기가 정말 아름다웠고, 하나된 여기가 천국이구나 하는 생각도 들기도 하였습니다. 특별히 집회에서 누구나 다 신언을 하는 것에 큰 감명을 받았습니다. 어린 지체들도 자연스럽게 일어나서 말씀을 암송하고, 누린 그리스도를 공급하는 모습이 정말 귀해 보였습니다. 신약에서 말하는대로 모두가 하나님께 제사장으로 살고 있다고 느꼈습니다.<br/><br/>또한 주님의 회복은 말씀의 회복이었습니다. 그래서 아침마다 부흥되기 위해 거룩한 말씀을 기도로 읽는 것을 훈련하고, 7차 집회의 풍성 안으로 매일 들어가 주님을 알고 누리며 체함하고 있습니다. 특별히 주님께 감사한 것은 성경 말씀이 부족한 저에게 말씀을 추구하는 기회를 주셨습니다. 여러 환경 안에서 과거에 동반자를 붙여 주신 것처럼 말씀의 추구에서도 여러 동반자들을 붙여 주셔서 시간을 쪼개어 사역의 말씀을 추구하게 하셨습니다. 영이요 생명이신 말씀을 늘 사모함으로 추구하라고 라이프 스타디, 워치만 니 전집을 읽게 하시고 소그룹, 대지역 안에서 교통하고, 한 주 동안 누린 그리스도를 신언 집회를 통하여 전람하게 하십니다.&nbsp; <br/><br/>형식화된 기독교에서 교회생활로 회복하게 하신 주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만일 교회생활의 회복이 없다면, 즉 하나님의 백성이 큰 바빌론에서 교회생활로 돌아오는 일이 없다면, 그리스도께서 그분의 두 번째 오심을 이루실 길이 없다는 것입니다. 이런 이유로 주님은 마지막 시대에 회복을 얻기 위해 일하고 계십니다. 저는 이 회복이 그리스도의 다시 오심을 위한 준비와 기반이 될 것이라고 믿습니다. 그리스도께서 그분의 다시 오심을 이루실 수 있도록 기반을 마련해 드리는 많은 마리아들과 사가랴들과 엘리사벳들과 시므온들과 안나들이 있게 될 것입니다. 그중에 저도 있기를 원합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두 번째 오심을 위해서는 교회의 회복이 필요합니다.<br/><br/>아멘! <br/>“우리의 국적은 하늘들에 있으므로, 우리는 거기에서 오실 구주, 곧 주 예수 그리스도를 간절히 기다립니다.”(빌 3:20)<br/><br/>“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준비되어 있습니다. 의로운 재판장이신 주님께서 그날에 나에게 그것을 보상으로 주실 것인데, 나에게만 아니라 그분께서 나타나시기를 사모하는 모든 사람에게 주실 것입니다.”(딤후 4:8) <br/>(H.S br)<p><a href="https://churchinseongnam.kr/bbs/view_image.php?fn=%2Fdata%2Ffile%2Ftestimony%2F3743830448_SgM6zU7x_160c2b297ed1d3fdeb3a84bae7c71a017d9805ff.jpg" target="_blank" class="view_image"><img itemprop="image" content="https://churchinseongnam.kr/data/file/testimony/thumb-3743830448_SgM6zU7x_160c2b297ed1d3fdeb3a84bae7c71a017d9805ff_600x405.jpg" src="https://churchinseongnam.kr/data/file/testimony/thumb-3743830448_SgM6zU7x_160c2b297ed1d3fdeb3a84bae7c71a017d9805ff_600x405.jpg" alt="" class="img-tag img-tag "/></a></p>]]></description>
	<dc:creator>청지기</dc:creator>
		<dc:date>Tue, 30 May 2023 09:28:43 +0900</dc:date>
	</item>
	<item>
	<title>30 늘 함께 하신 주님</title>
	<link>https://churchinseongnam.kr/bbs/board.php?bo_table=testimony&amp;wr_id=47</link>
	<description><![CDATA[어렸을 적 할머니께서 회복 안에 계셨기에 저는 교회 안에서 자랐습니다. 하나님을 몰랐고 그 가치도 몰랐지만 어려서부터 다니던 교회였기에 그저 습관처럼 다녔습니다. 그런 저를 유초등부 때부터 목양해주신 한 자매님이 계셨습니다. 그 자매님께서는 대학을 가기 전까지 10년이 넘도록 계속 아침부흥을 함께해주시고 전국 집회가 있으면 격려해서 함께 갈 수 있도록 도와주셨습니다. 매주 홈미팅에 초대해서 식사를 공급해주시고 찬송과 말씀을 공급해 주셨습니다. 그 때는 홈미팅이라는 것도 소그룹이라는 것도 몰랐습니다. 다만 밥 먹고 또래 중고등부와 놀고 가는 것이었습니다.<br/><br/>대학생이 되었을 때는 &#039;형제의 집&#039;에 들어갔습니다. 형제들과 24시간 함께하며 교회생활이 정말 생활이요 삶이 되었습니다.<br/><br/>&#039;형제의 집&#039; 생활은 쉽지 않았습니다. 각자의 삶을 살아오던 형제들과 하루 종일 붙어 있다는 것은 서로가 서로에게 십자가가 되는 생활이었습니다.<br/><br/>어느 날 주님을 만나게 된 순간을 묻는 말에 제가 언제 주님을 만나게 되었는지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제게 주님은 항상 옆에 계셨기에 특별히 만난 순간이 기억나지 않았었습니다.<br/><br/>저와 같은 수많은 회복 2세들이 그렇듯이 눈을 떴을 때부터 회복 안에서 주님을 접했습니다. 마치 생득권처럼 처음부터 사역의 말씀과 주님의 풍성이 옆에 있었습니다.<br/><br/>제게는 회복을 처음 접하고 구원을 받았다는 기억에 남는 순간은 없습니다. 다만 늘 항상 주님께서 옆에 계셨고 그분이 지켜주고 계셨습니다. 옷감에 염료가 스며들듯 제 삶에는 어느새 그분이 깊이 스며들어 있었고 그분과 함께 걷고 있었습니다. 제 삶이 모두 그분의 발자국이고 그분과 동행한 순간이었습니다.<br/><br/>구원의 순간을 묻는다면 저는 매일 매 순간이라고 답할 것입니다. 태어나고서부터 그분과 함께 할 수 있었다는 것이 회복 2세로서 누릴 수 있는 특권이었습니다. 그분과 함께할 수 있는 모든 순간에 감사드립니다.<br/><br/>주관적으로 주님이 제 안에 계셔서 거처 삼으시고 다른 지체들과 건축하고 계심을 믿고 사랑합니다.(H. S br)<p><a href="https://churchinseongnam.kr/bbs/view_image.php?fn=%2Fdata%2Ffile%2Ftestimony%2F3696107254_W6J4uZRf_1bc73263e5e1e4e503d15d319f29ec012bad29ae.jpg" target="_blank" class="view_image"><img itemprop="image" content="https://churchinseongnam.kr/data/file/testimony/thumb-3696107254_W6J4uZRf_1bc73263e5e1e4e503d15d319f29ec012bad29ae_600x450.jpg" src="https://churchinseongnam.kr/data/file/testimony/thumb-3696107254_W6J4uZRf_1bc73263e5e1e4e503d15d319f29ec012bad29ae_600x450.jpg" alt="" class="img-tag img-tag "/></a></p>]]></description>
	<dc:creator>청지기</dc:creator>
		<dc:date>Mon, 22 May 2023 16:49:23 +0900</dc:date>
	</item>
	<item>
	<title>29 한 마리 양을 찾으시는 주님</title>
	<link>https://churchinseongnam.kr/bbs/board.php?bo_table=testimony&amp;wr_id=46</link>
	<description><![CDATA[저는 천주교 집안에서 태어나 어릴적부터 부모님을 따라 성당에 다녔는데, 저만 무섭다고 울고불고 했다고 합니다. 이웃집에 사셨던 장로님께서 그 이야기를 듣고 저를 교회로 데리고 다녔고, 저는 매우 좋아해서 그 계기로 교회를 다니게 되었습니다. <br/><br/>&nbsp; 제가 초등학교 6학년때 어머님께서 심장마비로 갑자기 돌아가시는 바람에 다른 가족들의 성당 생활이 중단되었지만 저는 교회를 꾸준히 나갔습니다. 교회 나가는걸 마땅치 않게 여기셨던 새어머님께서 제가 이복동생들을 교회에 데리고 다니자 어머님도 결국 교회에 나오셨고 온가족을 교회에 이끈 계기가 되었고 어려움도 있었지만 하나님의 긍휼로 형제들도 잘 성장했습니다.<br/><br/>&nbsp;결혼 때는 믿음이 없는 남편과 결혼하게 되었지만 꼭 믿겠다는 약속하에 혼인을 했습니다. H 건설회사에 다녔던 남편은 늘 바쁘다는 핑계로 교회를 나갈수 없다고 했지만 해외 근무를 떠나게 될 때 목사님께 부탁해 세례를 받고 성경은 가지고 출국해 외로우니까 현지 교회에 다니면서 열심히 성경을 읽었다고 했습니다. 바빌론 시날 평야 갈대아 우르가 어딘지 사진을 찍어 보내주곤 했습니다. 해외 근무를 마친 후 건강상 이유로 사직서를 내고 분당에 아파트가 당첨되어 이사를 오게 되었습니다. 가게를 운영하면서 믿음 안에서 20 여년을 섬긴 교회가 대형 교회로 성장하자 목사의 빗나감으로 온 성도가 흩어지고 신문에까지 오르내리며 힘든 시간을 보냈습니다. 우리 가정도 방황했지만 이 교회 저 교회 순례를 하다가 마음 둘 곳을 못찾아 몇 날을 기도하며 쉰 적도 있었습니다.<br/><br/>그러던 어느날 한 자매님께서 〈회복역 성경〉 한 권을 선물로 주셨고 가게에도 여러번 방문하여 말씀도 해주시곤 했지만 귀에 들어오지도 않았고, 눈멀어 있었던 시기였던 것 같았습니다. 들으려 하지 않고 모든 것이 틀에 박힌 교회 생활에 익숙한 저는 마음을 열지 못해 많은 시간을 허비한 후에야 회복되었습니다. 심히 곤고하고 마음이 가난해졌을 때 문득 그 자매님이 떠오르곤 했지만 자매님께 냉정하게 거절의사를 밝혀 그 자매님은 3년 가까이 가게에 오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마음속으론 기다려지고 가끔 지나가는 걸 밖을 내다보곤 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 자매는 복음 파라솔 봉사 때 가정방문을 해 보라는 말씀에 다른 곳은 갈지라도 제 가게는 안 가겠다고 마음먹었다고 하더군요. 하지만 주님의 보내심으로 가게 문을 열고 들어서는 자매님을 보고, 제가 벌떡 일어나 반갑게 맞이하고 손을 잡고 제 아들은 교회에 데리고 가달라고 부탁드리고 저도 곧 교회 출석을 하게 되었습니다.<br/><br/>우리 남편을 조금 걱정했는데 교회집회에 출석해 들어보고 마음을 열고 일반 교회와 다르지만 말씀 위주의 교회라며 함께 교회 생활하게 되고 가족이 침례를 받고 동생까지 회복되었습니다. 이제는 말씀을 생명 안에서 누리고 참 안식을 누립니다. <br/><br/>저 역시 순수하고 신선하며 매일 새롭다는 느낌이 있습니다. 몸 안에 지체들이 기능을 발휘하여 공급하는 것과 생명이 흐르고 교회 생활에 안식과 만족이 있습니다. 영 안의 흐름에 따라 자유로우며 늘 묶이고 매여 있었던 지난날의 교회 생활과는 너무도 다른 진리 안에서 자유를 누립니다. 말씀이 실재가 되어 생활에 변화가 오고 생명이 자라는 것과 몸 안에 건축되고 있다는 영의 느낌이 있습니다. 주님의 긍휼하심으로 회복되어 주의 풍성을 누리고 몸 안에 있게 하심에 감사와 찬양을 드립니다. 참 농부이신 그리스도 안에서 익어가고 있습니다. 매일 그리스도를 살아내고 표현하며 확대되기를 소망합니다. 아멘.(J. H sr)<p><a href="https://churchinseongnam.kr/bbs/view_image.php?fn=%2Fdata%2Ffile%2Ftestimony%2F3555379117_OgxeMBoL_31947f2cde602131f2cb3deded690254958d4f57.jpg" target="_blank" class="view_image"><img itemprop="image" content="https://churchinseongnam.kr/data/file/testimony/thumb-3555379117_OgxeMBoL_31947f2cde602131f2cb3deded690254958d4f57_600x450.jpg" src="https://churchinseongnam.kr/data/file/testimony/thumb-3555379117_OgxeMBoL_31947f2cde602131f2cb3deded690254958d4f57_600x450.jpg" alt="" class="img-tag img-tag "/></a></p>]]></description>
	<dc:creator>청지기</dc:creator>
		<dc:date>Mon, 15 May 2023 16:32:25 +0900</dc:date>
	</it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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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28 끊임없는 중보기도로 얻은 넘치는 은혜</title>
	<link>https://churchinseongnam.kr/bbs/board.php?bo_table=testimony&amp;wr_id=45</link>
	<description><![CDATA[&#034;왜냐하면 여러분의 간구와 예수 그리스도의 영의 넘치는 공급으로, 이러한 일이 결국에는 나를 구원에 이르게 할 것을 나는 알기 때문입니다.&#034;(빌 1:19)<br/><br/>&nbsp; 저의 구원과 교회생활을 돌아볼 때, 저는 다른 누군가의 기도와 헌신으로 구원받고 주님의 회복의 길로 들어서게 되었다고 간증할 수 있습니다. 저는 미숙아로 태어나서 몸이 좋지 않았기 때문에 2살쯤 어머니께서 건강 문제로 어느 교파 교회에 연결되셨습니다. 어머니를 따라서 교파 교회를 나갔고, 어머니의 종교적인 열심을 물려받아서 어려서부터 성경도 열심히 읽고 주중 예배에도 빠지지 않고 참석했고, 나중에 목사가 되어서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고 교회를 섬기고 싶다는 마음도 갖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주님은 제가 주님의 회복의 길을 가기를 원하셨던 것 같습니다. 어머니는 제가 초등학생 때 회복의 진리를 접촉하고 교회생활을 시작하셨지만, 저는 종교적인 열심 때문에 이상을 보지 못해서 어머니를 매우 반대하고 괴롭혔습니다. 그러다가 10대 때 IMF를 거치면서 건설업을 하던 외가 친척 보증을 서 준 문제로 저희 집도 완전히 파산하게 되었습니다.&nbsp; 먹고 사는 것조차 힘들어지면서 제가 다니던 교파 교회와의 관계는 20대 초반에 결국 완전히 끊어지게 되었지만, 저는 여전히 회복 안에서 교회생활을 하지 않았습니다.<br/><br/>&nbsp; 물론 형제자매님들은 저를 많이 접촉하려고 하셨고 여러 방면으로 저를 많이 섬겨 주셨지만, 저는 미꾸라지처럼 거절하였습니다. 그러던 중 2000년대 초에 제 고향에 있는 교회에서 연초에 복음대상자, 목양대상자 중보기도 명단을 헌금함에 넣도록 하셨고, 저의 어머니는 저의 이름을 적어 넣으셨습니다. 그해 내내 성도들이 중보기도를 해 주셨는데, 그해에 특히 제가 어머니와 심하게 자주 다투었던 것이 기억납니다. 어머니는 매번 저에게 상처받는 말을 많이 들으셨고, 전혀 말을 듣지 않는 저 때문에&nbsp; 너무 마음이 아프셔서 눈물을 많이 흘리셨다고 합니다.더 이상 아들인 저를 감당할 수 없어서 주님께 맡기고 주님께서 저의 부모가 되어주셔서 저를 돌보아달라고 기도하셨는데, 그렇게 기도할 때마다 주님께서 말할 수 없는 평안으로 마음을 채워주셨다고 저에게 간증해 주셨습니다.<br/><br/>그리고 당시에 군생활을 하던 저는 환경이 점점 더 좋지 않게 되어, 그해 말에 세상에 소망이 없다고 느껴져서 사는 것조차 포기하고 싶었습니다. 12월 끝무렵에는 극단적인 선택도 생각했는데, 10월쯤에 저를 한 번 찾아오셨다가 저에게 매몰차게 무시와 거절을 당하고 쫓겨나셨던 어느 형제님이 갑자기 생각났습니다. 왠지 부모님에게도 말할 수 없는 이 어려움을 그 형제님을 만나서 말해야 할 것 같다는 느낌이 마음 안에서 강하게 일어났습니다.그래서 다음날 어머니께 그 형제님의 연락처를 받아 형제님을 찾아뵈었을 때, 몇 마디 대화를 하고 나서 저는 그 자리에서 1시간 동안 하염없이 울었던 것만 생각이 납니다. 그리고 그날부터 교회의 모든 집회에 참석하고 형제님들에게서 배우면서 교회생활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br/>&nbsp; <br/>&nbsp; 주님과 하나 된 누군가의 간구 덕분에, 저에게 닥쳤던 가정의 파산과 세상에서의 방황과 살 소망이 끊어지는 이 모든 것이 결국에는 저를 구원에 이르게 하였습니다. 제가 어려서 하나님과 하나님의 말씀을 알게 되었던 것, 하나님을 섬기고 싶었던 것도 누군가의 중보기도 덕분이었고, 주님의 회복으로 돌이킬 수 있었던 것도 전부 누군가의 중보기도 덕분이었습니다. 돌이켜 보면, 지금도 제 자신은 참으로 자랑할 것이 없지만, 저의 구원과 성장과 진보, 제가 받은 모든 축복이 머리이신 주님과 몸된 지체들의 중보기도로 말미암은 것임을 간증할 수 있습니다. 주님과 하나 된 형제자매님들의 중보기도가 누군가에게는 죽음이라는 인생의 벼랑 끝에서 하늘로 솟아오를 수 있도록 큰 전환점을 가져다준다는 것을 저는 간증하고 싶습니다. 이 땅에 주님과 하나 되어 중보기도 하는 수많은 형제자매님들을 주신 주님께 감사합니다.(M, J br)<p><a href="https://churchinseongnam.kr/bbs/view_image.php?fn=%2Fdata%2Ffile%2Ftestimony%2F3555374401_FdvacYrU_bae22a8172af7a3b5ff8d166c98ee23548c09618.jpg" target="_blank" class="view_image"><img itemprop="image" content="https://churchinseongnam.kr/data/file/testimony/thumb-3555374401_FdvacYrU_bae22a8172af7a3b5ff8d166c98ee23548c09618_600x450.jpg" src="https://churchinseongnam.kr/data/file/testimony/thumb-3555374401_FdvacYrU_bae22a8172af7a3b5ff8d166c98ee23548c09618_600x450.jpg" alt="" class="img-tag img-tag "/></a></p>]]></description>
	<dc:creator>청지기</dc:creator>
		<dc:date>Mon, 08 May 2023 17:45:06 +0900</dc:date>
	</item>
	<item>
	<title>27 주님과 단 둘이 보낸 귀한 그 시간</title>
	<link>https://churchinseongnam.kr/bbs/board.php?bo_table=testimony&amp;wr_id=42</link>
	<description><![CDATA[저는 주님의 회복 안의 가정에서 태어난 회복 2세입니다. 제가 앞장서서 어떤 결정을 한 기억도 없는데, 나이 먹는 만큼 교회 체류 기간은 차곡차곡 쌓여갔습니다. 대학에 진학하면서 당연한 일처럼 형제의 집에 들어갔습니다. 외형적으로는 교회생활과 캠퍼스 활동에 나름 적극적으로 참여했지만 주님에 대한 주관적인 체험은 희박했습니다. 그래서 주님을 강렬하게 만나고 체험한 지체들이 참 많이도 부러웠습니다. 또 저는 영화 보면서는 잘 울면서 정작 주님의 상 집회에서는 눈물 한 방울조차 나지 않는 제 자신이 매우 이상했습니다. 특별 집회에 가면 뜨거워져서 헌신하지만, 그 유효 기간이 채 삼일도 가지 못하는 모습에 자신이 참 한심했습니다. 좋은 신언을 하고 싶었지만, 신언 준비만 하면 머리가 더 복잡해지고 할 말이 점점 더 사라졌습니다. 주변의 형제자매님들의 신언은 너무 누림직했지만, 제가 신언하고 앉을 때는 저도 제가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모르겠다는 생각만 들었습니다. 대학 생활 일 년이 지날 때쯤 저는 제 자신이 결코 좋은 형제가 될 수 없다는 강한 확신이 들었습니다. 주변에 좋은 형제자매님이 많이 계시는데, 정작 제 자신은 너무 형편없고 초라하다고 느꼈습니다. 저 하나쯤 없다고 해도 전혀 티도 나지 않을 것 같았고, 심지어 다른 지체들의 교회생활을 위해서도 그편이 더 낫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얼마 후 군입대하면서, 교회생활을 떠나기로 자신에게 다짐했습니다. <br/><br/>제대한 후 부모님과의 관계는 최악으로 치달았고, 이런 가정에 태어난 것에 대해 하나님께 원망이 많았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하나님의 존재를 부정하면도, 제가 원망의 말을 쏟아내는 대상은 그분이었습니다. 제대 후 부모님은 저 때문에 마음이 많이 아프셨고, 결국 제게 어학연수를 권하셨습니다. 저도 미련 없이 뉴질랜드로 향했습니다. 그때는 부모님이 권하신 어학 연수가 전시간 훈련인지는 꿈에도 몰랐습니다. 어느 날 아침 부모님의 친구분이 저를 훈련 센터에 남겨두고 떠나셨습니다. 영어도 못하고 이메일도 없고 인터넷도 생소한 환경이라서 저는 처음에 제가 뉴질랜드 어디쯤 있는지도 몰랐습니다. 그렇게 저는 하나님을 원망하고 미워하면서 훈련생이 되었습니다.<br/><br/>그곳에서 첫 주일 집회에 참석했는데 한 형제님께서 메시지를 전하시는 시간이 있었습니다. 메시지 내용은 잘 기억나지 않지만, 형제님이 하셨던 한 질문과 제안은 꼭 제게 들으라고 하시는 말씀 같았습니다. 형제님은, 교회생활 중에 여러분은 자원하여 주님과 개인적인 시간을 보낸 적이 있는가를 물으셨습니다. 주님과 개인적으로 만나고 대화한 시간이 없다면, 그분께 여러분의 마음을 매혹하실 공정한 기회를 드린 적이 없는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말을 들을 때 양심 안에서 찔림이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제가 교회 생활에 오래 체류했고 많은 활동 가운데 포함되었지만 정작 주님과 단둘이 데이트한 시간은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다음 형제님은 6개월이나 1년을 두고 주님과 개인적인 약속을 잡아보라고 제안하셨습니다. 일종의 계약서라고 표현하셨습니다. 만약 그 시간을 보내고도 주님이 매력 없는 분이라면 어쩔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 그날 밤에 계약서를 작성하며 주님과 만날 약속 시간들을 종이에 적었습니다.<br/><br/>다음 날 아침 일어나 무릎을 꿇고 제 인생 처음으로 순수하게 자원하여 주님의 이름을 불렀습니다. 그냥 눈물이 많이 흘렀습니다. 그분을 처음 만나는 느낌이었습니다. 그동안 제 마음은 차갑고, 습하고, 어둡고, 더럽고, 공기도 통하지 않고, 아무도 찾지 않는 비좁은 골방이었다는 느낌도 들었습니다. 그 방 안에서 단 한 번도 불평하지 않으시고 저를 잠잠히 기다리신 주님께 너무 죄송했고, 그런 주님이 사랑스러웠습니다. 이제 제 기도는 단순합니다.<br/><br/>“주님, 제가 더 이상 당신을 특별하게 누릴 수 없더라도, 제가 좋은 형제가 될 수 없더라도, 제가 하는 신언이 계속 엉망이어도, 제가 하는 헌신이 쉽게 변하더라도, 당신을 계속 만나고 싶습니다.”(Benjamin Jang br)<p><a href="https://churchinseongnam.kr/bbs/view_image.php?fn=%2Fdata%2Ffile%2Ftestimony%2F3076750353_a4NsxZ2O_d118f32df1f80deaac5e23bb728e2e6459222a0e.jpg" target="_blank" class="view_image"><img itemprop="image" content="https://churchinseongnam.kr/data/file/testimony/thumb-3076750353_a4NsxZ2O_d118f32df1f80deaac5e23bb728e2e6459222a0e_600x450.jpg" src="https://churchinseongnam.kr/data/file/testimony/thumb-3076750353_a4NsxZ2O_d118f32df1f80deaac5e23bb728e2e6459222a0e_600x450.jpg" alt="" class="img-tag img-tag "/></a></p>]]></description>
	<dc:creator>청지기</dc:creator>
		<dc:date>Mon, 01 May 2023 08:40:38 +0900</dc:date>
	</item>
	<item>
	<title>26 “찾는 자에게 나타나시는 감추어지신 하나님”</title>
	<link>https://churchinseongnam.kr/bbs/board.php?bo_table=testimony&amp;wr_id=41</link>
	<description><![CDATA[저는 작은 아버지가 목사로 재직하고 있었기 때문에 어릴 때부터 주일 및 수, 금요일 예배 드리러 교회에 나가는 것과 기독교 문화(찬양, 부흥회)에 익숙하였습니다. &#039;예수님께서 사람들을 위해 죽으셨다,&#039;라는 사실은 믿고 있었지만, 고통당한 예수님의 모습도 부흥회 때 들었던 슬픈 이야기들 정도로만 막연하게 성경을 알고 있었습니다. <br/><br/>어린 시절 성경을 읽어보려고 했지만, 모든 내용들이 비유와 상징이었고 에덴동산의 선악과 나무부터가 이해하기 어려웠습니다. 논리적으로 납득이 돼야 완전히 믿을 수 있다는 생각을 가졌기 때문에 예수님을 구원자로 믿는 정도로&nbsp; 천국은 갈 수 있으니 시간, 비용을 절약하기 위해 선데이 크리스찬으로 살다가 죽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br/><br/>그러던 스무살 때 교환학생을 준비하고 있는데 친한 언니에게 교환학생 준비에 도움이 된다며 한 사람을 소개받게 되었습니다. 그 사람은 신천지 사람이었는데 학벌도 좋고 성경의 비유들을 이해하기 쉽게 알게해 주었고, 이러한 성경공부 때문에 기독교 문화, 성직자 제도들을 끔찍이 싫어하게 되었습니다. 목사들도 나처럼 대학 나오고 조금 공부하면 학위를 주고 성경을 얼마나 안다고 그런 교훈 같은 이야기를 가르치나라는 생각에 교회를 나가지 말고, &#039;그 사람&#039;을 따라가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br/><br/>&nbsp;그러던 중 남자 친구가 제가 성경공부하는 곳이 신천지인 줄 알게 되었고 목사님이신 작은 아버지에게 상황을 알리고 절대로 신천지로 가면 안 된다고 만류하였습니다. 이때 마음이 너무 힘들어&nbsp; &#034;하나님, 당신은 어떤 분이십니까?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당신의 참된 교회로 저를 인도하여 주시고 당신을 알게 해주십시오&#039; 라는 기도를 하게 되었습니다. <br/><br/>남자 친구와 작은 아버지의 만류와 교환학생으로 미국에 가게 되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성경공부는 중단되게 되었고 풀러턴(fullerton)이라는 곳의 대학교로 가게 되었습니다. 교환학생 등록을 위해 사무실 앞에서 대기하고 있었는데 어떤 한국인이 교회간다고 말하길래, 거기서 &#034;저도 같이 가면 안 돼요?&#034;라고 하고 무작정 따라갔는데, 그곳이 풀러턴에 있는 회복의 교회였습니다. 교환학생으로 미국에 있는 동안 형제자매들과 소그룹으로 집회하면서 평소에 궁금했던 성경에 관한 질문들을 하면서 복음과 부활 생명, 죄와 죄들에 대한 내용들을 이해하고 누리게 되었습니다. 제 기도에 대한 응답으로 하나님께서 참된 교회로 저를 이끌어주신 것 같아 감사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br/><br/>한국에 와서는 작은 아버지가 계신 기독교 안의 교회로 어쩔 수 없이 나가게 되었고, 참된 누림 없이 답답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참된 교회에 대한 갈증과 그리움을 가지고 있었는데 교회를 옮기기 쉽지 않았습니다. 취업하고 부모님으로부터 독립한 뒤, 집 근처 지하철역에 내렸는데 &#039;서울 교회&#039;라고 써있는 간판이 보여, 주일날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고 그 교회를 찾아갔습니다. 그 곳은 참된 찬양과 말씀이 있는 서울 교회의 집회소였습니다. <br/><br/>그렇게 주일, 소그룹 집회를 참여하며 행복하게 교회생활을 했고, 결혼을 할 시기가 되었습니다. 20살부터 사귀던 남자 친구와 결혼을 해야 하는데 남자 친구는 제 신앙을 못 미더워했고 오랜 시간 사랑하고 함께한 남자 친구도 참된 교회생활 안에 들어올 수 있게 해달라고 형제자매들에게 기도 부탁하고 저도 열심히 기도했습니다. 결혼을 앞두고 남자 친구는 미국 달라스 지역으로 3개월간 파견을 가게 되었고, 그곳에서 신학 박사학위를 2개나 취득한 형제님을 만나 참된 하나님과 교회생활을 알게 되어 함께 교회생활하며 결혼하기로 약속했습니다. 한 형제님께서 주례를 해주셨는데, 하나님을 사랑하고, 아내는 남편을 머리로 생각하고, 남편은 아내를 갈비뼈와 같이 내 몸처럼 사랑해주라고 말씀하셨고, 저는 첫째로 태어나 지시적이고 제멋대로 하는 성향이지만 하나님이 정하신 질서에 맞게 살기 위해 남편을 머리로 삼는 훈련을 하고 있습니다. <br/><br/>결혼 후 주소지가 성남이라 성남 교회에서 생활하게 되었고 주님을 누리면서 생활하고 있던 중 아이가 찾아왔습니다. 태명을 술람미로 짓고 하나님의 배필로 잘 키워야겠다고 생각했었는데 임신 7개월 중 사산을 하였습니다. 뭐든지 노력하면 못 이루는 것은 없다고 생각하던 저에게는 큰 충격이었고, 저에게 병이 있기 때문에 서울대 병원 국내 최고 산부인과 권위를 가진 교수는 다음 임신도 성공확률은 50%라고 이야기했습니다. <br/><br/>사람이 노력을 하더라도 달라지지 않는 생명의 문제 앞에 낙담하고 있었는데, 한 형제님께서 이런 말씀으로 큰 위로를 주셨습니다. &#034;하나님의 갈망은 자신을 번성하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갈망을 위해 기도를 한다면 꼭 들어주십니다. 하나님의 갈망인 하나님의 번성을 위해 아이를 낳도록 해 주십시오라고 기도하십시오&#034; 이 위로를 들으니 근심이 사라지고 하나님께서 주시는 평안만 남았습니다. <br/><br/>임신 기간 동안 사무엘상,하 결정연구에 대해서 누리면서 태명을 사무엘로 짓고 매일 자가 주사를 맞으며 하나님의 갈망을 위해 기도하고 출산을 준비할 때 평안함만 있었습니다. 임신을 유지하던 32주 차 어느날 발이 많이 붓고 소변이 나오지 않았고 다음날이 외래 진료가 있어 하루 자고 기다리다가 산부인과 교수님을 만나니 당장 수술해서 아이를 출산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남편은 조금만 더 기다리면 안되겠냐고 했지만, 이미 배 안에서 많이 자랐고(1.5kg) 32주면 출산하는게 기다리는 것보다 안전하다고 했습니다. 마침 의료진 파업 시기라 간호사가 없어서 수술이 가능할지 확실하지 않았지만 마음은 걱정 없이 평안함이 가득했습니다. <br/><br/>의료진 파업이라 인턴, 간호사 없이 교수들만 4명이 들어온 출산 수술은 성공적이었고 아이는 인큐베이터에 조금 있었지만, 건강하게 자랐습니다. 그 아이는 하나님-사람으로, 부모로서 유다말을 가르치고 하나님의 갈망을 기도하는 사람으로 자랄 수 있도록 양육하겠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감추어 계시지만, 찾는 자에게는 나타나시는 분이십니다. 제 20대는 하나님을 궁금해 했고 기도했고, 참된 교회를 하나님께서 만날 수 있도록 해주셨고 참 생명이신 주 예수님을 알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을 날마다 찾기를 원합니다. 주 예수님 찬양합니다. 사랑합니다.(Y, J Sr)<p><a href="https://churchinseongnam.kr/bbs/view_image.php?fn=%2Fdata%2Ffile%2Ftestimony%2F3555378905_nClXYRJL_3fae012591e2cc68dc4af1981b68f561c8321787.jpg" target="_blank" class="view_image"><img itemprop="image" content="https://churchinseongnam.kr/data/file/testimony/thumb-3555378905_nClXYRJL_3fae012591e2cc68dc4af1981b68f561c8321787_600x450.jpg" src="https://churchinseongnam.kr/data/file/testimony/thumb-3555378905_nClXYRJL_3fae012591e2cc68dc4af1981b68f561c8321787_600x450.jpg" alt="" class="img-tag img-tag "/></a></p>]]></description>
	<dc:creator>청지기</dc:creator>
		<dc:date>Mon, 24 Apr 2023 13:19:24 +0900</dc:date>
	</item>
	<item>
	<title>25 나의 으뜸이신 주님</title>
	<link>https://churchinseongnam.kr/bbs/board.php?bo_table=testimony&amp;wr_id=39</link>
	<description><![CDATA[주님을 찬양합니다. 저는 주님의 긍휼로 목양받으며 몸을 건축하는 과정 가운데 있는 형제입니다. 최근 10년 동안, 주님께서 응답하신 두 가지 큰 상황에 대해 형제 자매님들과 나누고자 합니다.<br/><br/>약 10년 전, 저는 한 자매를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그 자매와 결혼하기를 원했고, 다른 것은 아무 것도 고려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그 상황을 허락하지 않으셔서, 크게 낙심했습니다. 매일 새벽에 기도하며 주님 앞에 나아갔지만, 상황은 좋아지지 않았습니다. 어느 날, 주님께서 저에게 주신 은혜로, 자매를 사랑하는 것이 주님을 사랑하는 것보다 우선시되고 있었음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기도했습니다.<br/><br/>“주님, 제가 주님보다 이 자매를 더 사랑했습니다. 주님보다 더 사랑하는 것이 있었던 것을 회개합니다. 이 마음을 주님 앞에 내려놓기 원합니다. 다만 주님을 사랑하고 주님을 그 무엇보다 가장 사랑하기 원합니다.”<br/><br/>자매를 향한 사랑이 나쁜 것은 아니지만 주님보다 우선시하고 있었던 것을 빛 비춤받고 주님 앞에서 처리받은 저는 더 이상 슬프지 않았고 주님 안에서 평안을 누렸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날 놀랍게도 자매와 저 사이에 있었던 어려움은 모두 해결되었습니다. 그제야 주님께서 진정으로 원하시는 것이 무엇이었는지 저는 깨닫게 되었습니다. 결혼의 문제는 인생에서 중요한 것이지만 주님보다 소중한 것은 없습니다. 앞으로 남은 인생 가운데에서도 이 공과를 상기하며 다만 주님을 저의 모든 것으로으뜸으로 삼기 원합니다.<br/><br/>그 후 자매와 결혼한 뒤 저희 가정은 주님의 긍휼로 교회 안에 남아 교회 생활을 배우고 있습니다. 다만, 신입사원으로 일하고 있던 저는 어려운 가정 상황 가운데에서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고 있었습니다. 그래도 저희 부부는 교회 안의 다음 세대를 목양하고 물러난 지체들을 돌보는 일에서 주님의 뜻을 이루고자 했습니다. 다만, 이를 위해 돈이 필요했기 때문에 항상 고민이 많았습니다. 저희 부부는 주님 앞에서 기도했습니다.<br/><br/>“주님, 저희에게 많은 돈은 필요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지체들을 만나는 일에서 돈 때문에 꺼려지는 마음이 생깁니다. 이 상황을 주님께서 인도해주시고 공급해주시기 원합니다.”<br/><br/>그 후 이직의 기회가 찾아왔을 때, 저는 회사 네 군데에서 제안을 받았습니다. 그 중에서 주님과 교통 가운데 평안의 느낌을 따라 한 회사로 이직을 결정했습니다. 이전 회사에는 퇴사 의사를 밝히고 이직 날짜가 1주일 남은 시점에서 갑작스럽게 입사가 취소될 상황이 벌어졌습니다. 이에 깜짝 놀란 저는 그 후 다른 회사들에 연락을 취했지만, 내가 원했던 곳에서는 모두 입사가 어려운 상황이 되었고, 가기 싫었던 마지막 회사에 어쩔 수 없이 입사하게 되었습니다.<br/><br/>그러나 이 회사에서는 예상치 못한 많은 경험을 쌓을 수 있었고, 저희 부부가 직면했던 재정적인 문제도 해결할 수 있었습니다. 물질을 공급받는 것이 은혜를 누리는 것이라고 하기는 어렵지만, 이 일을 통해 우리 부부는 생활에 대한 많은 염려보다는 무엇이든 주님께 아뢰고 인도를 구하는 것이 유일한 필요임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br/><br/>사회생활을 시작하고 결혼을 고려하게 되는 청년들은 많은 고민을 하게 되고, 이는 자연스럽게 교회 생활과 멀어지는 원인이 되기도 합니다. 지금 고민 중인 많은 청년들이 주님의 사랑 안에서 보호받으며, 주님의 뜻을 따라 인도받기를 기도합니다. 고민을 주님과 교통할 기회로 붙잡아 주님과 친밀해지기 원합니다. 다만 주님을 으뜸으로 생각하고 사랑하는 청년들과 젊은 가정들이 더 많아지길 기도합니다.(J. H br)<p><a href="https://churchinseongnam.kr/bbs/view_image.php?fn=%2Fdata%2Ffile%2Ftestimony%2F3743820196_T7qZYWeB_de1154c7cb09997d45a7882fedff25fb5efafde9.jpg" target="_blank" class="view_image"><img itemprop="image" content="https://churchinseongnam.kr/data/file/testimony/thumb-3743820196_T7qZYWeB_de1154c7cb09997d45a7882fedff25fb5efafde9_600x450.jpg" src="https://churchinseongnam.kr/data/file/testimony/thumb-3743820196_T7qZYWeB_de1154c7cb09997d45a7882fedff25fb5efafde9_600x450.jpg" alt="" class="img-tag img-tag "/></a></p>]]></description>
	<dc:creator>청지기</dc:creator>
		<dc:date>Mon, 17 Apr 2023 09:38:49 +0900</dc:date>
	</item>
	<item>
	<title>24 내가 손을 놓아도 여전히 붙잡고 계신 주님</title>
	<link>https://churchinseongnam.kr/bbs/board.php?bo_table=testimony&amp;wr_id=36</link>
	<description><![CDATA[어린 시절, 열악한 가정 형편으로 친척집에 살아야 했던 유년기를 지나 20 차례 온 지방을 유랑하듯 이사를 하면서 친구도 친척도 어느 누구 의지할 곳 없던 어린 저의 한 가지 기도 제목은 한 곳에 머물기를 바라는 소망이었습니다. <br/><br/>&nbsp;중학생이 되면서 한 지방의 성서침례회 개척교회 목사님을 만나 정착하게 되어 목사님과 함께 동고동락하게 되면서 예수님을 영접하게 되었고 의지하게 되었습니다. &#034;예수님을 믿으면 천국에 들어가고 믿지 않으면 지옥에 떨어진다!&#034; 너무 간단한 진리가 맹목적으로 저의 청소년 시절을 지배했습니다. 두꺼운 성경책을 들고 등교하기에 당당했고 쉬는 시간마다 역사 속에서 성취된 성경의 계시와 예언을 이야기하는 즐거움으로 학교 생활을 하여 학년에 10여명을 전도하는 성취감과 만족감에 날이 갈수록 스스로 &#034;목사&#034;가 되어가고 있었습니다. <br/><br/>&nbsp;그러나 이 만족감은 그리 오래지 않아 많은 의문과 갈증으로 바뀌게 되었습니다. 해가 지날수록 목사님의 설교는 동일하게 들리기 시작했습니다. 진부하고 반복적인 설교로 인해 성경읽기 모임과 부흥회를 찾아 해매이게 되었습니다. 성경을 읽으면 읽을 수록 깊은 속에서 말씀하시는 말씀은 더 혼돈스럽게 들려 깊은 수렁에 빠지게 되어 인생의 중대한 기도를 하게 되었습니다. &#034;주님, 하나님의 말씀하심을 듣고 싶습니다. 성경의 말씀을 직접 듣고 싶습니다&#034;. <br/>&nbsp;<br/>&nbsp;어느날 진지한 신앙 상담을 통해서 &#039;깊은 속에서의 음성이 &#039;자아&#039;의 음성이지 주님의 음성이 아니다&#039;. 라는 대답은 &#039;과연 하나님은 살아 계시는가?&#039; 라는 의문으로 귀결하게 되었고 그 어린 시절을 지배했던 맹목적인 신앙마저 허사처럼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어느 깊은 밤, 밝게 떠오른 달을 바라보며 &#034;하나님! 진짜 살아계신가요?&#034; ... 오랜 시간동안 하늘을 쳐다보는 중에 그동안 작은 일들에도 간섭하며 들리던 &#039;자아&#039;의 말들이 아무런 반응도 응답도 없이 고요하였습니다. &#034;아- 맞구나. 이건 내 안에 내가 하는 말이었구나&#034;. 이 때는 고2 시절 일생일대 가장 심각한 시점에 이르렀습니다. <br/><br/>&nbsp;스스로 찾아 악행을 일삼기 시작했으며 그 누구도 컨트롤 할 수 없을 정도로 타락의 길로 빠져들어가 세상의 악의 구렁텅이에 빠져 자신만으로 사는 강한 자아로 &#039;썬데이 크리스챤들&#039;을 맹렬히 비판하며 &#039;하나님 없는 삶이 오히려 더 편하다&#039;라는 궤변으로 타락을 전염했습니다.&nbsp; <br/>&nbsp;<br/>&nbsp;&#034;오! 주예수님! 주님을 사랑합니다.&#034; 청소년 시절을 회상할 때 이 아이는 누구였던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나&nbsp; 작음 신음과 기도를 잊지 않으시는 주님. 주님의 긍휼로 성경의 헬라어 원문을 가장 쉽고 정확하게 번역한 &#039;회복역 성경&#039;과 입을 열어 하나님의 갈망과 부담을 전달하는 전달자와, 레마의 말씀을 선포하는 신언자와 주님이 가신 길을 묵묵히 따르는 살아있는 본인 인도자들이 있는 교회 생활 안에 있게 되었습니다. 우리의 기도에 응답하시며 우리의 한숨을 잊지 않으시는 주 예수님! 할렐루야! <br/><br/>&nbsp;광활한 바다에서 고무튜브에 목숨을 부지하는 구원이 아닌 배 위로 완전히 구원받아 떠내려가는 흐름을 거슬러 나아가는 교회생활로 이끄셨습니다. 우리에게 가야하며 항해해야 할 목표가 있고 도착지점이 있습니다. 더 이상 지난 날에 머물고 회상하거나 다시 바다로 뛰어드는 시간 낭비를 할 수 없습니다. 직접! 온전하게 하시고, 견고하게 하시며, 강하게 하시고, 터를 튼튼하게 하시는 은혜의 하나님!&nbsp; &#039;잠시 동안의 고난&#039;에 주시하지 않습니다. &#034;은혜 중에 은혜를 부어주시는 하나님&#034;을 주목함으로 새 예루살렘을 향하여 온 존재를 다시 한 번 열어드립니다! 아멘!(Pillar kim)<p><a href="https://churchinseongnam.kr/bbs/view_image.php?fn=%2Fdata%2Ffile%2Ftestimony%2F3076750353_FXAW8yHw_9634eb71d3ef70a5eea3fc61bcb2c8a06f254a8d.jpg" target="_blank" class="view_image"><img itemprop="image" content="https://churchinseongnam.kr/data/file/testimony/thumb-3076750353_FXAW8yHw_9634eb71d3ef70a5eea3fc61bcb2c8a06f254a8d_600x450.jpg" src="https://churchinseongnam.kr/data/file/testimony/thumb-3076750353_FXAW8yHw_9634eb71d3ef70a5eea3fc61bcb2c8a06f254a8d_600x450.jpg" alt="" class="img-tag img-tag "/></a></p>]]></description>
	<dc:creator>청지기</dc:creator>
		<dc:date>Mon, 10 Apr 2023 09:44:48 +0900</dc:date>
	</item>
	<item>
	<title>23 내 영을 살린 기도의 영</title>
	<link>https://churchinseongnam.kr/bbs/board.php?bo_table=testimony&amp;wr_id=35</link>
	<description><![CDATA[23 내 영을 살린 기도의 영<br/><br/>저는 1993년 고등학교 3학년 때 구원을 받았습니다. 어려서부터 아버지를 따라서 가족 전체가 종교적인 카톨릭 미사에 매주 주일에 무조건 참석하곤 하였습니다. 서울 잠실 성당 주일학교도 토요일마다 친구들과 함께 다니면서 나름 성당 건물의 웅장한 파이프 오르간과 아름다운 성가대, 그리고 종교적 건물 공간에서 풍기는 외적인 분위기를 좋아했습니다. 하지만 정작 성경은 전혀 읽어본 적이 없으며, 오직 신부님의 강독을 통한 성경 말씀만을 알았을 뿐 스스로가 성경을 읽거나 말씀을 묵상해 본 적은 없었습니다. <br/><br/>그러다가 먼저 회복을 통해 구원받으신 어머니께 저도 교회에 데리고 가 달라고 요청하여 서울 교회 1집회소에 나가게 되었습니다.&nbsp; 토요일 오후에 청년 집회가 있었는데 송○○ 형제님이 기타를 치시면서 찬송가를 부르고 계시던 모습이 지금도 기억에 생생합니다.<br/><br/>그리고 얼마 안 가서 미국 애너하임 훈련 집회가 있었는데 당시에 위트리스 리 형제님이 인도하시는 집회를 영상으로 접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저의 구원은 사실 그날 리 형제님의 기도가 상당히 영향을 미쳤다고 봅니다. 집회 시작 전에 형제님의 기도를 통해 “아! 사람이 저런 식으로 하나님께 간구할 수 있구나.” 그리고 기도의 내용이 이때까지 들었던 그런 종교적인 것과는 상관없는 뭔가 말할 수 없는 간절함에 엄청나게 집중을 하게 되어 리 형제님의 기도를 따라, 절실히 같이 기도했던 경험은 처음이었습니다. 그때 아마 저의 죽어 있던 영이 리 형제님의 기도 가운데 부활 생명을 체험한 듯합니다. 이때까지 그런 기도는 한 적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결국 사람의 영은 기도를 통해 소생합니다. <br/><br/>그때 이후로 저는 새사람으로 거듭났으며 그로부터 얼마 안 되어서 침례 받은 후 주님의 은혜로 교회생활을 꾸준히 하게 되었습니다. 매일 추구하는 말씀과 양식을 통해서 생명의 인식을 깨닫고 변화되어가고 있습니다. 영광스러운 새 예루살렘의 건축재료로 변화되고 완성되어가는 이 노정을 감사드립니다. 주님의 놀라운 이 구원의 은혜를 찬양합니다. 아멘.(J. Y br)<p><a href="https://churchinseongnam.kr/bbs/view_image.php?fn=%2Fdata%2Ffile%2Ftestimony%2F3555376239_ZNyJnEIM_1bd2d08614e4fd72fbdf700c7b4054e9dd9e306a.jpg" target="_blank" class="view_image"><img itemprop="image" content="https://churchinseongnam.kr/data/file/testimony/thumb-3555376239_ZNyJnEIM_1bd2d08614e4fd72fbdf700c7b4054e9dd9e306a_600x400.jpg" src="https://churchinseongnam.kr/data/file/testimony/thumb-3555376239_ZNyJnEIM_1bd2d08614e4fd72fbdf700c7b4054e9dd9e306a_600x400.jpg" alt="" class="img-tag img-tag "/></a></p>]]></description>
	<dc:creator>청지기</dc:creator>
		<dc:date>Mon, 03 Apr 2023 17:37:51 +0900</dc:date>
	</item>
	<item>
	<title>22 자신을 부인함으로 가정을 얻음</title>
	<link>https://churchinseongnam.kr/bbs/board.php?bo_table=testimony&amp;wr_id=33</link>
	<description><![CDATA[저는 남편에 비해 여러모로 부족한 점이 많은 사람이었지만 하나님은 저에게 인격적이고 다정다감하며 자상한 그리고 아내를 귀중하게 여기는 인품을 지닌 좋은 사람을 남편으로 안배해 주셨습니다. 그는 좋은 실력과 직장을 가졌으므로 경제적으로도 아쉬울 것 없는 생활을 누렸으며 하나님이 주신 두 아들과 결혼 생활을 잘 누리며 살고 있었습니다. 종가집의 장손으로 정신적, 경제적 기둥으로 많은 희생을 해 왔고 결혼 후에는 처갓집의 필요도 본가 못지않게 물심양면으로 희생하는 좋은 남편이었습니다. <br/><br/>종교적으로는 시댁이 카톨릭의 박해를 겪으신, 특히 조부모님의 신앙 아래서 신앙심을 키워왔던 사람이었습니다. 저도 남편과 함께 성당에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럼에도 마음속 깊은 곳은 어둠이 있었고 막연하게 주님에 대한 갈급함에 배고프고 목마른 상태가 지속되어 카톨릭 안의 성령 세미나 등과 같은 각종 영성을 추구하는 프로그램에 참여하여 애써봤으며 명동 카톨릭 출판사에서 영적인 도서를 구해 읽어보아도 제게는 모두 저 높은 곳의 이야기일뿐 깊은 영을 만져주지 못했고 만족이 없었습니다. 저는 그리스도께서 어떤 분이신지 정확히 모르지만 그분만이 나의 필요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 “주님, 저를 어떻게 하실 것입니까?”라고 탄식하며 말씀드리기도 했습니다. 이것은 아마 학창시절부터 엄마를 따라 기독교 안에서 목사님 설교를 듣는 것을 좋아했고 성가대 봉사를 통해 즐거운 교회생활을 하면서 주님과 대화하는 것을 조금은 배운 것 같습니다. 그러던 중 제 막내 여동생이 미국에서 회복된 교회생활을 하고 있으면서 한국을 방문할 때면 저의 집에 묵었고, 또 다른 혼자된 제 여동생에게 전달해줄 서적 두세 권을 오래전 서재에 꽂아 놓았던 생각이 들어 그 책을 읽어보았으나 잘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책 뒤에 있는 당시 서초동 한국복음서원의 전화번호로 전화를 통해 우리 집에서 가까운 곳에 있는 집회소를 알게 되었고 그곳을 찾아 방문했는데 마침 자매집회가 있는 날이었습니다. 집회에 참석하고 특히 찬송가 가사가 어떻게 내 마음을 그대로 대변하는지 많은 눈물을 흘리며 집회를 누렸습니다. <br/><br/>우리 동네에 어떤 자매님이 이사하게 되어 형제님들이 방문하러 오신다는 소식을 듣고 몹시 추운 날이었지만 형제님들을 저희 집에 모셔오고 싶은 절박한 마음에 골목에서 서성이며 기다리던 끝에 만나게 되어 집으로 오시게 하여 차를 마시고 교통을 하였습니다. 그후 처음으로 구입한 《아침 부흥을 위한 거룩한 말씀》을 추구하게 되었는데 정말 저의 배고픔을 채워주었고 만족하게 했으며 제 생명의 양식으로 누려졌습니다. 그 후로는 성당을 한번도 가지 않았습니다. 남편은 크게 실망하여 가정을 완전히 망치고 끝나게 했다며 결사적으로 반대를 했으나 저는 완전히 마음을 굳힌 상황이므로 핍박이 시작되었습니다. <br/><br/>하루 아침에 사랑스럽던 아내에서 만물의 찌끼로 전락하는 신세가 되었고 마담 귀용의 찬송시가 저의 노래가 되었으며 요한 사도의 하나님의 말씀과 증거 때문에 밧모섬에 갇힌 것이 저의 체험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주님의 날에 내가 영 안에 있었으며...”라는 말씀처럼 그때만큼 주님의 임재를 극도로 누린 적이 또 있었을까? 특히 제 안에서 진리가 빛이 되어 하나님의 경륜의 이상이 임하여 성경의 어떤 장을 읽어도 연결이 되어 ‘그리스도와 교회’라는 중심사상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또한 생활에서 이상이 적용되어 어떤 환경 가운데서도 그리스도께만 초점이 맞춰지니 얼마나 놀라운지! 이 고난의 기간에 깨달은 소중한 것은 주님께서 제 인생의 새 역사를 쓰시는 동안에 남편 안에서도 동시에 새 역사를 쓰시기 위해 운행하셨다는 것입니다. <br/><br/>주님은 제 자신을 부인하는 십자가의 공과를 가르치셨습니다. 우리 가정에 나 한 사람이 하나님의 증인으로 하나님과 교회를 대표하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인식하며 나의 태도 말투와 처신과 행동이 하나님과 그분의 몸인 교회를 대표하고 표현한다는 것에 늘 두렵고 떨리는 심정으로 십자가의 길을 갈수 있도록 공급하시며 가르치셨습니다. 주님은 나의 인성을 통해 그분의 신성한 사랑으로 남편을 사랑하는 실재가 있도록 은혜를 극도로 공급하셨고 가정의 머리인 남편의 권위 아래 사는 것을 알게 하셨으며 하나님은 질서의 하나님이라는 것을 알게 하셨습니다. 그 후 거의 8년을 각자의 길에 있었지만 사실 상당 기간을 이미 우리 가정에 주님이 함께 하심을 남편도 알게 되어 속으로는 인정받은 상태였습니다. 《라이프스타디》를 추구하고 또 집회에서 누리고 공급받은 말씀을 남편과 일상 대화를 나눌 때에도 기회를 붙잡아 내게 허락하신 분량의 한계 안에서 진리를 남편에게 전달하곤 했습니다. 지체들의 기도와 생명공급으로 남편은 차차 분별이 생기면서 종교 안의 직함을 내려놓고 회복의 책들을 읽도록 인도되었고 완전히 회복된 교회생활 안에서 추구하며 누리는 교회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이 어떠한 긍휼과 은혜인지요! 주님께 감사와 찬양이 넘칩니다. 이 간증문을 쓰면서 제 마음은 다시 부흥되고 영은 불타오릅니다. 이런 회상은 처음 사랑으로 나의 영을 회복시킵니다 할렐루야! 주님을 찬양합니다.(S. Y Sr)<p><a href="https://churchinseongnam.kr/bbs/view_image.php?fn=%2Fdata%2Ffile%2Ftestimony%2F3076750353_zaSXGfVC_e9a0c8176cfcbedfc1eb316cc8e76c17cc907e00.jpg" target="_blank" class="view_image"><img itemprop="image" content="https://churchinseongnam.kr/data/file/testimony/thumb-3076750353_zaSXGfVC_e9a0c8176cfcbedfc1eb316cc8e76c17cc907e00_600x450.jpg" src="https://churchinseongnam.kr/data/file/testimony/thumb-3076750353_zaSXGfVC_e9a0c8176cfcbedfc1eb316cc8e76c17cc907e00_600x450.jpg" alt="" class="img-tag img-tag "/></a></p>]]></description>
	<dc:creator>청지기</dc:creator>
		<dc:date>Mon, 27 Mar 2023 15:43:50 +0900</dc:date>
	</item>
	<item>
	<title>21 잃었던 나의 하나님을 찾아 내 은혜가 되었네</title>
	<link>https://churchinseongnam.kr/bbs/board.php?bo_table=testimony&amp;wr_id=32</link>
	<description><![CDATA[&#034;집에 돌아와, 친구들과 이웃을 불러 모으고 &#039;나와 함께 기뻐해 주십시오. 잃었던 내 양을 찾았습니다.&#039;&#034;(눅 15:6)<br/><br/>저는 청년 때까지 조계종에 33년을 계셨던 어머니로 인해 금불상과 달마승 그림액자로 가득한 집안에 살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언제나 아침마다 어머니의 불경 외우는 소리에&nbsp; 깨곤 하였습니다. 제가 군대를 제대할 때쯤 아버지는 정년퇴직을 하면서 큰형과 베트남과 관련된 무역 사업을 하셨는데, 갑자기&nbsp; 정책이 바뀌면서 많은 시간 추진했던 일들과 계약이 물거품이 되었고 빚더미에 앉게 되었습니다. 친척들과 은행에서 빌린 돈을 갚지 못하자 많은 질책과 빚쟁이들의 압력으로 결국 아버지는 견디지 못하시고 유서를 남기고 자살을 시도하셨습니다. 그 당시에 집에 혼자 있던 나는 아버지의 다급한 전화 목소리에 놀라 형에게 연락하여 급하게 그 장소로 가게 되었고, 병원으로 모시고 갔습니다. 다행히 목숨을 건지시고 치료를 받게 되었습니다. <br/><br/>이런 상황속에 큰누나는 미국에서 한국에 잠시 들어와 집안 사정을 알게 되어 부모님을 모시고 미국으로 가게 되었고, 저는 필요한 물건만 들고 지하 단칸방에 살고 있던 직장동료의 셋방에 얹혀서 살게 되었습니다.<br/>그렇게 10년을 전전긍긍하며 방랑생활을 하다가, 한국의 큰누나 집을 관리하기 위해 다시 귀국하신 부모님과 옥상에 방을 만들어 함께 살게되었습니다. <br/><br/>그렇게 몇년이 지난 어느날이었습니다. 저는 직장 동료이지만 마음에 맞아 주일에도 함께 여행을 다니던 친구가 오랫동안 소식이 없자 궁금하기도하여 네가 주일에 가는 곳을 나도 한번 따라가보자고 약속하고 주일 아침에 함께 가게 되었는데 그곳이 교회였습니다. 그곳에 들어가 앞에 앉아 있던 사람의 등뒤에 숨어서 듣고 있다가 무언가 내 귀에 쏙 들어오는 것이 있었는데, 내 안에 깊이 뭔가가 들어온 것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그것이 구원인지 모른채 일주일 정도 지나 습관처럼 친구와 함께 술을 한모금을 마셨는데 갑자기 머리가 무겁고 찢어질 듯이 아픈 통증이 일주일동안 계속 되었습니다. 왜 그랬을까 생각하며 원인을 알수 없었지만, 점차 머리 아픔은 사라지고, 몇십년 먹어온 술과 담배는 끊어지고 동시에 그에 대한 입맛을 잃게 되었습니다. <br/><br/>이기적이며 양심에 무감각하고, 비관적으론만 살았던 제가 기묘하게도 형제자매님들을 사랑하게 되었고, 만나는 것이 너무나 즐겁고 기쁜 생활을 하게 되었습니다. &#034;저에게 하나님의 긍휼이 임했고,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영원한 사랑으로 나에게 오셨구나&#034;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교회생활은 시작되었으며 성도들의 많은 돌봄과 목양으로 말씀의 실재를 체험하며 무엇보다도 행복한 것은 하나님께서 나를 찾아주심으로 전혀 몰랐던 나의 하나님을 만나게 되어 인생의 참 의미를 알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br/><br/>다시 2년이 지나 부모님은 미국의 큰누나집으로 가시게 되셨고 저는 또다시 그 집에 혼자 남게 되었습니다. 그날 저녁에 청년부의 모임이 있었고 저는 성도들에게 그날 있었던 일들을 자연스럽게 간증하게 되었습니다. 듣던 청년 형제자매님들은 마음안에 어떤 감동이 있었는지, 저희 집에 모두 오셔서 저녁을 같이 먹고 몇몇 형제들은 하루밤을 같이 지냈습니다. 일찍 눈을 뜬 다음날 아침, 불현듯 &#039;이때를 놓치면 결혼을 끝까지 못하겠구나&#039; 라는 생각과 함께 강한 부담이 생기게 되어 바로 교회 봉사하시는 형제님에게 이 부담을 전달하였고, 자주 만나진 않았지만 어둡고 암울한 우리 집안에 들어오면 좋을 것 같은 해맑은 한 자매가 떠올랐습니다. 이렇게 하여 몇주 후에 소식을 받은 자매님의 승낙과 함께 교회 장로 형제님의 초대에 같이 대면하게 되었고, 만남의 시간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후 6개월 뒤 교회 형제자매님들의 사랑과 놀라운 축복가운데 결혼하게 되었습니다. 지금은 하나님이 주신 사랑스런 아내와 두 딸과 함께 하나님의 경륜을 이뤄가고 있음을 주님께 깊이 감사드립니다!(S. T Br)<p><a href="https://churchinseongnam.kr/bbs/view_image.php?fn=%2Fdata%2Ffile%2Ftestimony%2F3076750353_7qhoYJLr_14f38c58c334d06dc5d131a666192e4baff6d9c3.jpg" target="_blank" class="view_image"><img itemprop="image" content="https://churchinseongnam.kr/data/file/testimony/thumb-3076750353_7qhoYJLr_14f38c58c334d06dc5d131a666192e4baff6d9c3_600x400.jpg" src="https://churchinseongnam.kr/data/file/testimony/thumb-3076750353_7qhoYJLr_14f38c58c334d06dc5d131a666192e4baff6d9c3_600x400.jpg" alt="" class="img-tag img-tag "/></a></p>]]></description>
	<dc:creator>청지기</dc:creator>
		<dc:date>Mon, 20 Mar 2023 15:51:09 +0900</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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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20 주님의 회복을 알다</title>
	<link>https://churchinseongnam.kr/bbs/board.php?bo_table=testimony&amp;wr_id=30</link>
	<description><![CDATA[저는 대전에서 독실한 기독교 집안에서 태어나 어릴 때부터 어머니를 따라 장로교회에 다니면서 구원받고 대학을 졸업하고는 원자력발전소 설계하는 ‘코펙’이라는 회사에 취업하여 서울에서 살게 되었습니다. 서울에 와서는 누님의 권유로 여의도 순복음교회에 다니게 되었는데, 누님은 여의도 순복음교회 전도사로 재직하고 있었고 저는 나름 대학부 봉사도 하면서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성가대 봉사, 철야 예배도 빠지지 않고 참여하는 등 제게는 직장생활 다음이 교회생활이었습니다.<br/><br/>어느 날, 같은 회사 전기부에서 근무하는 Y 형제님이 점심시간이면 위층 토목부에 있는 나에게 가끔 찾아오셔서 복음신문을 책상 한 켠에 두고 가시는가 하면 커피 한 잔을 건네며 그날 누린 말씀을 전해주셨습니다. 나는 ‘형제님이 부흥회 다녀오셔서 뜨거워져서 이렇게 말씀을 전하시나보다.’라고 생각했습니다. 형제님께서 매일 조금씩 말씀하시는데 제게 빛이 임하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다니던 교회에서는 들어보지 못한 살아있는 말씀이 새롭게 와 닿았습니다. 어느 날 철야예배 가서 찬양하고 통성기도를 하는데 기도가 나오지 않았습니다. 이런 일이 없었는데 너무도 이상해서 다음 날 Y형제님을 찾아가 상황을 말씀드렸더니 형제님께서 “기도는 하나님께 무엇을 해달라고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이름을 부르고 그분의 갈망과 필요를 구하는 것이 참된 기도입니다.&#034;라고 말씀해주셨습니다.<br/><br/>회복의 진리를 접하고나서도 성가대 봉사도 하고 열심을 다했지만 이전과는 같지 않고 뭔가 갈증이 있었습니다. Y형제님께 찾아가 &#034;형제님 저도 형제님 다니는 교회에 가보고 싶습니다.”라고 했더니 형제님께서 서울 교회 신림집회소를 연결해 주셔서 갔는데 그곳은 신림동 지하에 있는 작은 집회소였습니다. 여의도 순복음교회는 사람도 많을 뿐 아니라 건물도 으리으리한 반면에 신림집회소는 너무도 작고 초라해 보였지만, 한 사람 한 사람 주님의 이름을 부르고 주님에 대해 말해내는 지체들 얼굴에서는 빛이 났습니다. 낮에는 순복음교회에서 맡은 봉사와 일을 감당하고, 밤에는 서울 교회 지체들과 누리는 말씀이 너무 달콤했습니다.<br/><br/>주님을 추구할수록 ‘아! 이건 아니구나. 합당한 교회생활이 필요하구나’ 하는 걸 느끼고 목사님을 찾아가 자초지종을 말씀드리고, 그 교회에서 하던 봉사의 일을 내려놓고 홀가분한 마음으로 합당한 지방 입장인 서울 교회로 돌아와 지체들과 섞이며 달콤한 회복 안의 교회생활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 때가 1990년도니까 회복 안에 들어 온지도 벌써 30년 이란 세월이 흘렀네요.<br/><br/>성경 일독하면서 매일 아침부흥 말씀을 누릴 때 회복 안의 진리가 얼마나 귀하고 값진 것인지 날마다 체험하고 누립니다. 우리의 시련은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인에게 정해준 몫이요, 그리스도인의 행복은 외적인 것이 아니라 내적인 것이며 시련 가운데 그리스도를 누리며 그분의 만족을 구하는 데 있습니다. 아멘!(K. H br)<p><a href="https://churchinseongnam.kr/bbs/view_image.php?fn=%2Fdata%2Ffile%2Ftestimony%2F3076750353_YDh2dHGy_2ecf4a384f9aebf93b0a333d8b4e8d17924184c5.jpg" target="_blank" class="view_image"><img itemprop="image" content="https://churchinseongnam.kr/data/file/testimony/thumb-3076750353_YDh2dHGy_2ecf4a384f9aebf93b0a333d8b4e8d17924184c5_600x400.jpg" src="https://churchinseongnam.kr/data/file/testimony/thumb-3076750353_YDh2dHGy_2ecf4a384f9aebf93b0a333d8b4e8d17924184c5_600x400.jpg" alt="" class="img-tag img-tag "/></a></p>]]></description>
	<dc:creator>청지기</dc:creator>
		<dc:date>Mon, 13 Mar 2023 13:35:49 +0900</dc:date>
	</item>
	<item>
	<title>19  아버지 집으로 돌아오다</title>
	<link>https://churchinseongnam.kr/bbs/board.php?bo_table=testimony&amp;wr_id=29</link>
	<description><![CDATA[저는 믿지 않는 가정에서 태어나서 자랐습니다. 청소년 시절을 거치면서 제 안에는 많은 궁금증이 있었습니다. 하늘의 별, 우주, 그 끝에는 무엇이 있을까? 사람들은 왜 교회에 다니는 걸까? 성경은 무슨 책일까? 모르는 것이 너무 많았습니다. 아무도 알려주지 않았고 계속 궁금한 채로 살았던 것 같습니다. <br/><br/>그러던 중 목사님 댁에서 어떤 책을 발견했습니다. 사형수들을 전도하여 구원받고 사형당하는 장면을 기록한 책인데 구원받은 사형수가 편안한 모습으로 죽는 것을 보고 저는 신선한 충격을 받았습니다. 죽음의 공포를 이기는 그 힘은 무엇일까? <br/><br/>“하나님이 살아계시는구나!”라는 것을 느꼈습니다. 더욱 하나님은 어떤 분일까 알고 싶어졌습니다. 저는 결혼을 하고 집에서 가까운 교회에 다니기 시작했고 그때부터 많은 교회 단체를 이곳저곳 다니며 목사님 설교가 좋다고 하면 친구들과 가서 들어보고 하였지만&nbsp; 거기까지였습니다. 무언가 채워지 않는, 말씀의 실재에 대한 갈증때문에 저는 더욱 미궁속으로 들어가는 것 같았습니다. 그만 다니고 싶었지만 그럴 수도 없는 답답한 마음이 있습니다. <br/><br/>기독교 안에 추구하는 몇 명의 자매님들과 성경공부를 하게 되면서 왕십리에 있는 요한 웨슬레 계통의 작은 교회를 다니게 되었습니다. 목사님도 훌륭하시고 성도들 분위기도 좋았습니다! 목사님은 설교에 워치만 니 형제님의 일화를 소개하시기도 하고 그 당시에는 몰랐지만 《라이프 스터디》를 설교에 많이 인용하셨습니다. 성도들과 같이 구역예배를 할 때 회복의 책을 같이 읽고 추구하였습니다<br/><br/>《12 광주리 가득히》,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 또 《오늘의 양식》으로 매일 아침 Q.T를 하며 하루를 시작하였습니다. 이때부터 성경에 대해 조금씩 눈을 뜨기 시작하며 성경을 알아가기 시작했습니다. <br/><br/>그러나 교회는 성경과는 다른 상태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항상 나 혼자라는 생각을 했고 그래도 목사님 말씀이 진리라는 생각으로 믿고 의지하였습니다. 그리고 워치만 니 형제님을 안다는 것을 자랑스러워하였습니다.<br/><br/>어느 날 성남 교회를 다니는 후배를 만나게 되었는데, 그 후배에게도 내가 다니는 교회와 워치만 니 형제님을 소개하고 싶어졌습니다. 그래서 “너, 워치만 니 형제님 아니?” 그랬더니 그 후배는 웃기만 하고 대답은 하지 않았습니다. <br/><br/>나중에 그 후배 소개로 성남 교회를 오게 되었습니다. 두 번째 자매 집회를 참석할 때, 주님의 이름을 부르는 지체들의 모습과 신언을 통해서 “주님이 여기 계시구나. 그리스도의 몸이 여기에 있구나.”하며 이 발견을 너무 기뻐하였습니다. 그동안 오랫동안 주님을 찾아 헤매던 저에게 주님은 드디어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오게 하셨습니다. 비로소 안식과 기쁨과 평강이 찾아왔습니다. 이제 더 이상의 방황은 없습니다. 저를 회복 안으로 이끄신 주님의 그 사랑을 비로소 깨달았습니다.<br/><br/>모든 찬송이 나를 위한 것이었습니다. 제 안의 답답함이 해결되고 주님의 이름을 부르면서 해방감을 맛보게 되었습니다. 저에게 한숨을 쉬는 습관이 저한테 있었는데. 그 습관도 없어졌습니다. 지금은 딸 둘도 결혼하고 교회 생활을 잘하고 있습니다. 일생 저를 목양하시고 당신의 회복 안에 저를 살게 하신 주님을 사랑합니다.&nbsp; 그리스도와 그분의 몸인 교회를 사랑합니다. 모든 것이 주님의 은혜입니다. 주님을 찬양합니다.(B.H sr)<p><a href="https://churchinseongnam.kr/bbs/view_image.php?fn=%2Fdata%2Ffile%2Ftestimony%2F3076750353_GFqbkdsf_239264aecb53778227603900d157efdf1defcb80.jpg" target="_blank" class="view_image"><img itemprop="image" content="https://churchinseongnam.kr/data/file/testimony/thumb-3076750353_GFqbkdsf_239264aecb53778227603900d157efdf1defcb80_600x399.jpg" src="https://churchinseongnam.kr/data/file/testimony/thumb-3076750353_GFqbkdsf_239264aecb53778227603900d157efdf1defcb80_600x399.jpg" alt="" class="img-tag img-tag "/></a></p>]]></description>
	<dc:creator>청지기</dc:creator>
		<dc:date>Mon, 06 Mar 2023 15:28:48 +0900</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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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18 안식과 평안을 주는 주님의 이름</title>
	<link>https://churchinseongnam.kr/bbs/board.php?bo_table=testimony&amp;wr_id=28</link>
	<description><![CDATA[저는 어린 시절부터 신앙생활을 하였습니다. 나이가 점점 들어가면서 계속되는 뭔가 불분명하고 모순된 교파의 생활 가운데 저 자신의 신앙생활은 점점 지쳐서 모든 것에 무감각하게 되었습니다. 정말 이런 것이 교회생활인가? 그래도 하나님은 계시겠지? 하는 무수한 의문들이 해결되지 못하는 나날들이 지나가고 있었습니다. 그 무렵 어느 날 해외 출장을 가게 되었습니다. 마침 현지에 살던 학창시절 친구가 저를 주일날 현지에서 유명한 교파의 교회로 인도하였고 예배에 참석하게 되었습니다. 그날 그 교회의 설교와 그 후 이어지는 여러 가지 일들은 저에게 정말 절망적인 마음을 가지게 되었고 당분간 교회는 나가지 않겠다는 마음까지 가지게 되는 영적 죽음의 상태가 되었습니다.<br/><br/>다음 출장에서 다시 그 도시를 거쳐 다른 도시로 가는 과정에서 사업조사 차 처음 가보는 도시라서 호텔보다는 한인 민박에 있는 것이 현지 사정도 이해하는데 좋을 것 같다는 생각에 전화번호를 찾기 시작하였습니다. 여러 곳을 찾았지만 그 중에 2~3 곳이 적당한 것 같았고 마지막 한 곳이 모든 일정이 적합하였습니다. 제가 전화를 드렸더니 안주인 되시는 분이 시간이 맞으니 적당하다고 하시며, 남편 되는 분이 마침 제가 있던 도시에 교회의 무슨 훈련을 받으러 가셨다고 제가 도착하기 하루 전에 돌아오니까 정말 모든 시간이 잘 맞았다고 하시면서 좋아하셨습니다. 저는 일정을 마치고 그 도시로 가게 되었고 마침 남편 되시는 분이 공항으로 저를 마중 나오셨습니다. 말도 별로 없으시고 웃으시기만 하시면서 그 댁으로 가게 되었습니다. 그 댁에서 약 3주 정도 머무는 동안 시간이 날 때마다 간단히 대화를 나누었고 서로의 신앙생활도 공유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주일날 나가시는 교회를 같이 갈 수 없는지 여쭈어보았으나 별로 흔쾌히 즉답을 안 하시고 다음 기회를 보자고 하셨습니다. 제가 교파 생활을 하는 가운데 자신이 다니는 교회에 가자고 하는 데 적극적이지 않는 분은 본 적이 없기에 내심 좀 다른 분들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br/><br/>그다음 주에 저에게 주님의 이름에 관해서 교통을 하시더니 같이 불러보자고 하셨습니다. 저는 그분들과의 교통 가운데 성경 말씀 중에 주님의 이름이 나오는 부분이 그렇게 많은지 처음 알게 되었습니다. 정말 신기하고 놀라운 경험이었습니다. 저는 주님의 이름을 부르는데 거부감이 없었고 매우 평안이 있었습니다. 그 날 잠자리에 들면서 주님의 이름을 부르면서 잠이 들었더니 정말 평안과 안식이 있었습니다. 그다음 날 교통을 드렸더니 아주 기뻐하시고 그다음 주의 집회에 초대되어 참석하게 되었습니다. 형제자매님들과 처음 인사하고 참석한 신언 집회가 생소하였지만 저는 거기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교회의 모습이 이런 것이 아닌가 감동하였습니다. 이미 오래전 이야기지만 지금도 그때의 감동이 생생함을 주님께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그 도시를 떠나기 전에 시간을 내어 형제님과 “생명의 인식”을 같이 추구하였는데 정말 놀라움의 연속이였습니다. 제가 여태까지 본 책 중에서 정말 진리의 결정 내용으로 가득한 책이었습니다. 직전까지 신앙생활을 포기하다시피 한 상태였지만 주님의 은혜와 긍휼로 다시 회복되었습니다. 제가 회복되기까지 모든 과정 중에 우연은 없었습니다. 모든 것이 주님의 안배의 손길과 형제자매님들의 동역 가운데 있었던 것입니다. 수년이 지난 지금도 감사한 것은 그때의 감동이 교회 생활 가운데 점점 커진다는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을 인해 주님께 감사드립니다. 주 예수님!(D.H br)<p><a href="https://churchinseongnam.kr/bbs/view_image.php?fn=%2Fdata%2Ffile%2Ftestimony%2F3555379030_LsGWOvoj_ba55e9c80bf8cf90d15d152999f2fd33d0c73cdc.jpg" target="_blank" class="view_image"><img itemprop="image" content="https://churchinseongnam.kr/data/file/testimony/thumb-3555379030_LsGWOvoj_ba55e9c80bf8cf90d15d152999f2fd33d0c73cdc_600x400.jpg" src="https://churchinseongnam.kr/data/file/testimony/thumb-3555379030_LsGWOvoj_ba55e9c80bf8cf90d15d152999f2fd33d0c73cdc_600x400.jpg" alt="" class="img-tag img-tag "/></a></p>]]></description>
	<dc:creator>청지기</dc:creator>
		<dc:date>Mon, 27 Feb 2023 12:54:12 +0900</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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