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남 교회 전 성도 특별 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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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남 교회 전 성도 특별 집회

2026년 1월 2일부터 4일까지 2박 3일 동안 성남 교회는 다섯 번의 특별 집회를 가졌다. 이번 집회는 두 반으로 운영되었는데, 하나는 기초반(등록 140명)으로서 '천국의 정의'를 다루었고 하나는 적용반으로서 '하나님의 왕국의 실재 안에 삶'(270명)을 다루었다. 주제는 서로 다르지만 최종 목적은 성도들이 천국의 실재 안에 삶으로써 천국의 나타남에 참여하도록 하는 것이다.





다음은 적용반의 메시지 요약이다.

메시지 1 교회 건축을 위한 왕국의 훈련

긍휼과 최고의 공급

마태복음은 천국에 관해 세 방면을 말한다. 5장부터 7장까지는 천국의 실재를, 13장은 천국의 외형을, 24장과 25장은 천국의 출현을 말한다. 오늘 교회 안에서 천국의 실재 안에 살아야만 우리는 그날 천년 왕국에서 천국의 출현에 참여할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은 우리의 노력이 아니라 전적으로 하나님의 긍휼에 의한 것이다. 또한 마태복음이 천국의 요구에 대해 말한다면, 요한복음은 그 천국의 요구를 이루도록 하는 최고의 공급에 대해 말한다.

그러므로 이 같은 온전하게 하는 집회를 통해 어느 정도 천국의 실재를 갖게 되었다면 우리는 그것이 전적으로 하나님의 긍휼임을 고백해야 한다. 더 나아가 우리가 그러한 실재 안에서 살아갈 수 있는 것도 전적으로 그분의 신성한 생명의 공급에 의한 것임을 인정해야 한다.

마태복음 16장은 교회를 건축하는 길을 계시하고 또한 건축의 원수를 계시한다.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 합니까?"라고 물으실 때 어떤 이는 침례자 요한, 어떤 이는 엘리야, 어떤 이는 예레미야나 신언자들 중 한 사람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주님은 제자들에게 "여러분은 나를 누구라고 합니까?"라고 물으셨다. 그때 베드로가 “주님은 그리스도이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라고 대답하였다. 베드로는 이러한 계시를 사람에게서 얻은 것이 아니라 하늘에 계신 아버지에게서 얻었다. 그러나 주님은 이러한 계시로 만족하지 않으시고, 베드로가 얻은 계시 위에 그분의 교회를 건축한다고 말씀하셨다. 그러고 나서 자신이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에 의해 십자가에 못 박히고 삼 일 만에 부활할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주님께서 교회를 건축하시는 길은 다름 아닌 죽음과 부활이다. 그러나 베드로는 주님을 붙잡고서 이런 일이 결코 그분에게 일어나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어떤 번역본은 이 부분이 베드로가 주님께서 그분 자신을 불쌍히 여기시기를 바란다고 되어 있다. 이때 주님은 베드로를 사탄이라고 부르시며 내 뒤로 물러가라고 말씀하셨다. 베드로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을 생각했으므로 그의 생각 속에 사탄이 들어갔다. 사탄은 항상 우리의 생각 속에 물음표를 넣는다. 하나님께서 정말로 너에게 어떤 나무의 열매도 먹지 말라고 하셨는가? 사탄은 하와에게 그 나무의 열매를 먹으면 하나님처럼 선과 악을 분별할 수 있게 된다고 말했다. 우리는 이러한 물음표를 거절해야 한다. 그럴 때 물음표가 느낌표로 바뀔 것이다.

교회를 건축하는 것은 세 가지 열쇠를 사용하여 음부의 문들을 닫는 데 달려 있다. 자아와 생각과 혼생명은 사탄이 교회를 공격하고 손상하러 나오는 주된 문들이다.

마태복음 16장 24절에 대한 <회복역 성경> 각주 1은 생각과 자아와 혼생명의 관계를 다음과 같이 말한다.
"우리의 생각은 자아의 표현이고, 자아는 혼생명의 체현이다. 혼생명은 사람의 자아 안에 체현되고, 자아를 통해 살아 나타난다. 그리고 우리의 자아는 생각과 사고와 관념과 의견을 통해 표현된다."

천국의 문들과 음부의 문들에 대해 말할 때 우리는 두 가지를 배워야 한다. 먼저 우리는 사람들이 천국 안에 들어오도록 열쇠를 사용하여 천국의 문을 여는 사람이어야 한다. 또한 교회 건축을 위하여 우리 타고난 생각과 자아와 혼생명이라는 음부의 문들을 걸어 잠가야 한다. 그 길은 바로 자아를 부인하고 혼생명을 잃어버리며 십자가를 지는 것이다. 이것이 우리가 왕국의 실재 안에 사는 첫 번째 훈련이다.

계시도 받고 변화되며 왕국 복음도 전파한 베드로가 사탄이 된 것은 우리에게 큰 경고이다. 그의 자아에 의해 죽음이 음부의 문들을 통해 교회 안에 들어왔다. 베드로는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을 생각했다. 이러한 생각이 자아를 표현하며, 혼생명을 잃어버리지 않고 구원하게 했다. 2026년 새해에 우리는 교회를 건축하기 위해 천국의 실재 안에 살도록, 천국의 문을 여는 사람이 되어야 할 뿐 아니라 음부의 문들을 닫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메시지 2 하나님의 주권 아래서 하나님의 긍휼에 따라 삶

여기에 하나님의 주권과 하나님의 긍휼이 있다. 리 형제님은 요셉의 일생을 통해 하나님의 주권을 언급하셨다. 요셉은 별들과 곡식단들이 자기에게 경배하는 꿈을 꾸었다. 그러나 그는 실지로 자신이 겪은 모든 부당한 대우가 하나님의 주권임을 알았다. 그가 꿈을 말하여 형들의 미움을 받아 구덩이에 던져지고, 형들에 의해 이집트로 팔리고, 보디발의 아내의 유혹 때문에 감옥에 갇히고, 풀려난 술 맡은 관원이 요셉의 도움을 잊어버린 것 등이 모두 하나님의 주권이었다.

그러나 그런 환경 속에서도 하나님의 주권 아래 하나님의 긍휼을 입은 요셉은 파라오의 꿈을 해몽하게 되었다. 나중에 그는 이집트의 총리가 되었고, 형들과 아버지 야곱을 대하는 모든 일에서 하나님의 긍휼을 입은 사람으로 나타났다. 그는 자신이 총리가 된 것을 아버지에게 가볍게 알리지 않았으며 형들을 벌하지 않고 하나님의 긍휼로 대했다. 신약에서 베드로가 모든 사람이 주님을 버릴지라도 자신은 버리지 않겠다고 말했지만 주님은 닭이 울기 전에 세 번 그가 주님을 부인할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닭이 운 것은 주님의 주권이었다. 부활 후에 주님께서 자신이 부활한 사실을 제자들과 베드로에게 말해 달라고 하신 데서 우리는 그를 향한 하나님의 긍휼을 볼 수 있다. 왕국의 실재 안에 살기 위해 우리는 하나님의 주권 아래서 하나님의 긍휼을 따라 사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메시지 3 생활에 있어서 깨어 있고 봉사에 있어서 신실함

우리 믿는 이들은 두 가지 신분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바로 처녀와 노예이다. 처녀는 우리의 생활과 관련이 있고 노예는 우리의 봉사와 관련이 있다. 우리는 생활에 있어서 깨어 있어야 하고 봉사에 있어서 신실해야 한다.

마태복음 25장에 열 처녀 중에 다섯 처녀는 지혜롭고 다섯 처녀는 어리석었다. 그들 모두가 신랑을 만나러 가기 위해 깨어났으므로 분명 그들은 믿는 이들이다. 자다가 깨어났다는 것은 그들이 죽었다가 부활한 성도들임을 말한다. 주님이 다시 오시는 날에 지혜로운 다섯 처녀는 결혼 잔치에 참여할 것이지만 어리석은 다섯 처녀는 참여하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마태복음 24장은 밭에서 일하는 두 남자와 맷돌을 가는 두 여자에 대해 말한다. 그들 모두는 일하는 가운데 데려가졌기 때문에 분명 살아 있는 믿는 이들이다. 두 사람 중 한 사람은 데려가지고 한 사람은 남겨졌다. 이 두 경우는 모두 우리가 깨어 있어야 함을 말하고 있다.

지혜로운 처녀가 되려면 우리 영 안에, 즉 우리 등 안에 하나님의 영을 담아야 할 뿐 아니라 그릇인 우리 혼 안에도 하나님의 영을 담아야 한다. 우리의 생각과 감정과 의지가 성령으로 적셔져 그분의 생각과 감정과 의지와 똑같이 되어야 한다.

우리는 이 땅에 처녀로 있을 때 기름을 사는 이들이 되어야 한다. 그날에는 지불해야 할 대가가 너무 클 것이다. 기름값이 오른 후에 주유하는 사람들은 그 전에 기름을 넣지 못한 것을 후회할 것이고, 증권에 투자한 사람들은 주가가 올라가는 것을 볼 때 그 전에 투자하지 않은 것을 후회할 것이다. 은혜 시대는 기름이 가장 쌀 때이다. 우리는 이 시대에서 대가를 지불하여 우리의 생각과 감정과 의지 속에 하나님이 채워지게 해야 한다. 그럴 때 우리는 결혼 잔치에 참여하게 될 것이다.

봉사에 있어서 우리는 신실한 노예가 될 수도 있고 게으른 노예가 될 수도 있다. 게으른 노예는 게으를 뿐 아니라 악하고 쓸모없는 사람을 가리킨다. 게으른 것은 악한 것이다. 우리는 게으른 노예가 될 것인가, 부지런한 노예가 될 것인가?

처녀와 노예는 차이가 있다. 처녀는 기름을 담는 사람이지만 노예는 기름을 공급하는 사람이다. 처녀는 생명 공급을 받는 사람이지만 노예는 생명을 공급하는 사람이다. 처녀는 자신이 필요하여 먹고 마시지만 노예는 다른 사람의 목마름과 배고픔에 공급한다. 우리는 두 가지 신분에 있어서 균형을 이루어야 한다.

노예로서 우리는 달란트를 장사하여 이윤을 남겨야 한다. 주님의 유업은 곧 그분의 소유이다. 그분의 소유를 우리에게 주실 때 그것은 우리의 달란트가 된다. 하나님은 어떤 사람에게는 다섯 달란트를, 어떤 사람에게는 두 달란트를, 어떤 사람에게는 한 달란트를 주셨다. 다섯 달란트보다 더 받은 사람도 없고 한 달란트보다 덜 받은 사람도 없다. 믿는 이라면 누구나 한 달란트 이상을 가지고 있다. 달란트는 하나님이 주신 타고난 재능을 가리키지 않는다. 달란트는 하나님이 주신 소유로서 복음과 진리와 믿는 이들을 가리킨다. 우리는 이러한 달란트를 가지고 장사하여 주님의 칭찬을 받아야 한다.

다섯 달란트 받은 사람은 장사를 잘하여 다섯 달란트를 남겼고, 두 달란트 받은 사람을 두 달란트를 남겼다. 그러나 한 달란트 받은 사람은 그것을 땅에 묻었다. 우리의 달란트를 땅 곧 세상에 묻어 버리지 말아야 한다. 한 달란트 받은 사람은 핑계를 댔다. 그는 주인이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키질하지 않은 데에서 모으는 분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주인은 그 노예가 악하고 쓸모없다고 했다. 주인은 한 달란트 받은 사람에게 그가 마땅히 돈 바꾸는 사람에게 한 달란트를 맡겨서 적어도 이자를 남겨야 한다고 말했다. 돈 바꾸는 사람이란 새로운 사람이나 뒤로 물러난 믿는 이를 가리킨다. 한 달란트 받은 사람들은 그들을 구원하고 그들에게 생명을 공급해야 한다. 한 달란트 받은 사람이 이렇게 한다면, 그는 다섯 달란트 받은 사람이나 두 달란트 받은 사람과 똑같이 보상을 받고 주인의 잔치에 참여할 것이다.

그러므로 천국의 실재 안에 살기 위해 우리는 음부의 문들을 잠가 버리고 하나님의 주권 아래서 그분의 긍휼 안에 살아야 할 뿐 아니라, 생활에 있어서 지혜로운 처녀로서 깨어 있고 봉사에 있어서 노예로서 신실해야 한다.




메시지 4 하나님의 왕국을 이끌어 오는 영적 전쟁과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아들의 왕국 안에서 삶

우주 가운데에는 세 가지 의지가 있다. 그것은 하나님의 의지와 사탄의 의지와 사람의 의지이다.

하나님의 창조물 중 천사장 루시퍼는 자신의 아름다움을 보고 교만해졌다. 이사야서 14장 13절에 "나"가 여러 번 언급된다. 이것은 사탄의 의지를 말한다. 그는 하늘로 올라가 하나님의 별들 위로 자신의 보좌를 높인다고 말했다. 여기에서 사탄이 하나님을 대항하는 전쟁이 시작되었다. 하나님은 그분의 형상과 모양대로 사람을 창조하신 후, 그 사람을 생명나무와 선과 악의 지식나무 앞에 두셨다. 여기에서 하나님의 뜻(의지)을 볼 수 있다. 그때 뱀으로 상징되는 사탄이 하와에게 와서, 하나님께서 정말로 어떤 나무의 열매도 먹어서는 안 된다고 말씀하셨느냐고 의문을 제기했다. 여기에서 사람의 의지가 무엇을 선택하는지가 중요하다. 사탄은 항상 우리에게 물음표를 던진다. 우리가 영적 전쟁에서 하나님의 의지를 선택하여 사탄을 굴복시킬 때 그 물음표는 느낌표가 된다. 영적 전쟁에서 우리의 의지는 항상 하나님 편에 서야 한다.

영적 전쟁의 근원은 신성한 의지와 사탄의 의지의 충돌에 있다. 교회로서 우리는 사탄의 의지를 굴복시키고 하나님의 원수를 패배시켜야 한다. 우리는 영적 전쟁이 하나님의 왕국과 사탄의 왕국 사이의 전쟁임을 알아야 한다.

시편 110편 3절은 주님의 전쟁의 날에 주님의 백성이 헌신의 광채 안에서 기꺼이 자신을 바친다고 말한다. 사람들은 군대에서 힘든 부서에 가지 않으려고 한다. 군대 징집이 있을 때 자격이 되는데도 여러 이유로 가지 않으려고 핑계를 댄다. 그러나 국가가 원하는 곳에 가고자 하는 사람도 있다. 우리는 헌신에 광채 안에서 기꺼이 자신을 바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왕국의 왕이신 주님께서 우리를 부르고 계신다. 우리는 그분의 부름에 응하여 영적 전쟁에 참여해야 한다.

아버지는 우리를 어둠의 권세에서 구출하셨고 그분께서 사랑하신 아들의 왕국 안으로 옮기셨다. 이것이 미래형이 아니라 과거형이다.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우리에게 이미 다 이루어 주셨다. 영적 전쟁을 할 때 우리는 무엇을 할 필요가 없고 다만 그분께서 이루신 모든 것에 반응하면 된다.

로마서의 주제는 죄인들을 하나님의 아들들이 되게 하여 그리스도의 몸을 조성하고 각 지방에 있는 교회들로 표현되게 함이다. 하나님의 뜻은 그리스도와 교회이다. 즉 그리스도를 사람 안에 분배하여 아들들이 되게 하고 몸으로 조성되게 하는 것이다. 우리는 무엇을 할 필요가 없고 다만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것을 누리면 된다.

하나님은 빛이시고 사탄은 어둠이다. 하늘들의 영역에 있는 악한 권세, 반역의 권세는 사탄의 왕국, 어둠의 권세이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죽음에 의해, 그리고 부활 안에 있는 그리스도의 생명에 의해 마귀 사탄에게서 구출되었다. 아버지께서 사랑하시는 아들의 왕국 안으로 옮겨지는 것은 바로 우리에게 생명이 되시는 아들 안으로 옮겨지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아들의 왕국은 하나님의 뜻의 핵심적인 한 방면이며,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아들의 왕국 안에는 모든 것을 포함하신 그리스도라는 한 분과 십자가라는 한 길만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아들의 왕국 안에서 그리스도께 만물 가운데 첫째 위치, 으뜸의 위치를 드려야 한다.

왕국의 실재 안에 살기 위해서 우리는 우리의 의지를 하나님 편에 둠으로 영적 전쟁을 해야 하고 하나님의 왕국 안에서 사랑하시는 아들을 누리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메시지 5 왕국 복음을 전파하고 민족들을 주님의 제자로 삼음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왕국이라는 단어를 좋아하지 않고 나라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왜냐하면 여호와의 증인이 왕국이라는 단어를 잘못 사용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라와 왕국은 다르다. 나라는 영토와 주권과 국민으로 구성되어 있다. 나라는 많은 것으로 조직화되어 있다. 그러나 왕국은 그렇지 않다. 예를 들어, 동물의 나라라고 하지 않고 동물의 왕국이라고 하며 식물의 나라라고 하지 않고 식물의 왕국이라고 한다. 이처럼 왕국은 생명과 관련이 있다.

왕국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하나님의 통치 영역이다. 하나님은 우리 안에서 왕국의 씨로 그분 자신을 뿌리시고 그 영역을 우리 온 존재 안으로 확장하고자 하신다. 이것이 왕국이다. 우리가 주님을 믿을 때, 왕국의 씨 곧 왕국의 유전자가 우리 안에 뿌려졌다. 우리는 이 씨가 우리 안에서 자라고 살게 함으로써 우리 안에서부터 밖으로 표현되게 하여 그분의 다스리는 영역으로 발전시켜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의 왕국이 그리스도 자신임을 알아야 한다. 육체 되심의 단계에서, 그분은 하늘에 속한 그분의 왕국을 세우기 위해 왕으로서 사역하실 때 그분 자신을 의사와 목자와 수확의 주님으로 여기셨다. 우리 주님은 신분이 왕이시지만 사람들에게 의사와 목자와 수확의 주님으로 여겨지셨다. 사람은 나이가 들어 병들 뿐 아니라, 사실상 젊은 사람을 포함하여 모든 사람이 어느 부분은 아프고 병들어 있다. 우리가 어떤 사람에 대해 좋지 않게 생각한다면 그것은 일종의 질병이다. 어떤 지체가 당신에게 화를 내고 짜증을 낸다면 그것은 그에게 의사가 필요하다는 것을 말해 준다. 목자는 양 떼를 먹이고 푸른 풀밭으로 인도한다. 우리는 사람들을 의사이신 주님께로 이끌어야 할 뿐 아니라 목자이신 주님께로 이끌고 그들을 목양해야 한다.

또한 주님은 수확의 주님으로 여겨지셨다. 왕으로서 사역하실 때 그분은 결코 자신에 의해서나 자신을 위해서나 자신을 향해서 존재하지 않으셨다. 그분이 하신 모든 것은 하나님의 영에 의한 것이자 아버지 하나님의 왕국을 위한 것이었다. 여기서 우리는 주님께서 스스로 무엇을 하지 않으신 것을 본다. 왕국의 실재 안에 살기 위해 우리는 동역하는 것을 배워야 한다. 복음을 전파하는 일에서 때로 우리는 많은 반대를 당한다. 겉으로 볼 때, 우리가 많은 복음지를 뿌려도 수확하는 것은 많지 않은 것 같다. 그렇지만 주님은 수확할 것이 많다고 말씀하셨다. 우리가 동역 가운데서 복음을 전파한다면 수확할 것들을 발견할 것이다. 왕국 복음은 이 시대의 끝이 오기 전에 온 세상에 전파되어 모든 민족에게 증거가 될 것이다. 주님은 그분의 오심을 준비하고 계신다. 이스라엘이 회복되었고, 세계정세를 보면 성전이 건축되는 과정에 있으며, 적그리스도도 일어날 것이다. 그러나 더 적극적인 면에서, 이 시대의 끝이 오기 전에 반드시 한 가지 일이 일어나야 한다. 그것은 바로 왕국 복음이 사람이 거하는 모든 곳 즉 땅끝까지 전파되는 것이다.

하늘에 속한 왕은 그분의 제자들에게 그분의 권위를 주어 보내셨는데, 그것은 모든 민족을 그분의 제자로 삼아 왕국 백성이 되게 함으로써 오늘날 이 땅에 있는 교회인 그분의 왕국을 세우기 위한 것이다. 민족들을 그분의 제자로 삼는 것은 그들을 그리스도의 죽음 안으로, 그분 자신 안으로, 삼일 하나님 안으로, 그리스도의 몸 안으로 침례 주는 것이다. 침례란 무엇인가? 간단히 말하면 영역이 옮겨지는 것이다. 침례는 교회에 가입하기 위한 절차가 아니라 영역이 옮겨지는 것이다. 민족들을 주님의 제자로 삼는 것은 그들에게 신성하고 비밀한 영역 안에 있는 신성한 진리들을 가르쳐서 그들이 예수님 안에 있는 실제대로 그리스도를 배우도록 하는 것이다. 우리는 사람들을 그리스도 자신과 몸 안으로 침례를 주어야 할 뿐 아니라 신성한 진리를 그들에게 가르쳐야 한다. 이런 가르침이 바로 사도들의 가르침이다. 이런 가르침으로 가르칠 때 우리는 그들이 예수님 안에 있는 실재대로 그리스도를 배우도록 도와야 한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실재란 주님께서 이 땅에서 사셨던 생활, 즉 자신에 의해 살지 않고 아버지에 의해 사는 그 실재이다. 우리는 예수님 안에 있는 실재대로 성도들이 진리를 배우도록 가르쳐야 한다.

누군가가 우리에게 왕국에 대해 묻는다면 우리는 적어도 왕국의 세 방면을 말해 주어야 한다. 그것은 곧 왕국의 실재와 외형과 출현이다. 왕국의 실재는 마태복음 5장부터 7장까지에 있고, 왕국의 외형은 마태복음 13장에 있으며, 왕국의 출현은 마태복음 24장과 25장에 있다.

마태복음 13장에 있는 왕국의 외형 부분에서 주님은 왕국에 대해 깨닫는 이가 복이 있다고 말씀하셨다. 오늘날 종교 안에 있는 사람들은 듣기는 들어도 결코 깨닫지 못하고, 보기는 보아도 결코 알지 못한다. 그러나 회복 안에서 우리는 왕국에 대해 들은 것을 깨닫고 보았다.

주님의 회복은 점진적이다. 마르틴 루터는 행위가 아닌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는 것을 보여 주었다. 주님은 모든 성직 계급을 내려놓은 한 무리의 형제들을 통해 왕국이라는 진리를 회복하셨다.

주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실 때 두 강도가 그분의 양쪽에서 함께 못 박혔다. 처음 세 시간 동안 많은 이가 그분을 모욕하고 두 강도도 그분을 모욕하였다. 그러나 한 강도는 다른 한 강도에게 "우리는 우리가 저지른 일에 대해 마땅한 벌을 받는 것이 당연하지만, 이분은 잘못하신 것이 아무것도 없으십니다."라고 하면서 주님의 왕국에 들어가실 때 자신을 기억해 달라고 말씀드렸다. 그때 주님은 “오늘 그대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을 것입니다.”라고 말씀하셨다. 그날 이 강도는 간단히 몇 마디를 하여 구원을 받았다.

이 강도와 비교되는 한 사람이 있다. 그 사람의 이름은 사울이고 나중에 바울이 되었다. 본래 그는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을 박해했지만 주님을 받아들여 구원을 받고 왕국을 위해 살았다.

왕국이 대단히 중요했기 때문에 주님은 부활하신 후에 40일 동안 제자들에게 왕국에 대해 보충 수업을 해 주셨다. 사도 바울은 뒤에 있는 것들을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들을 향해 달리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디모데후서에서 그는 자신이 선한 싸움을 싸웠고 달려갈 길을 다 달렸으며 자신을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준비되어 있다고 말했다.

여기 두 사람이 있다. 강도와 바울이다. 하나님께서 이 땅에서 아무렇게나 살다가 구원받은 그 강도와 왕국을 향하여 달음질한 바울을 똑같이 대우하신다면 불의한 분이 되실 것이다. 우리는 왕국을 위하여 살아야 한다.



마지막으로 '왕국'이라는 책을 소개하고자 한다. 이 책은 51장으로 되어 있는데. 마지막 장의 제목은 '넉넉히 왕국에 들어감'이다. 앞으로 51일 주가 남았는데 우리가 매주 한 장씩 추구한다면 넉넉히 왕국의 출현에 들어갈 것이라고 믿는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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