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전반기 봉사자 및 전성도 온전케 하는 훈련#3
성남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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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6.06 17:28
메시지 3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아들의 왕국인 하나님의 왕국
하나님의 왕국은 아버지의 사랑하시는 아들의 왕국인데 여기서 우리는 아들과 아버지의 관계가 어떤지 볼 필요가 있다. 신약에서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는 사람의 상상을 초월한다.
마태복음 3장에서 예수님이 침례 받으실 때 하늘에서 "그는 나의 사랑하는 아들이요 기뻐하는 아들이라."(17절)라고 말했고, 17장의 변화산에서 베드로는 주님을 위하여 장막 셋을 짖으려고 할 때 하늘에서 예수만이 그분의 사랑하는 아들이요 기뻐하는 아들이라고 말했다(5절). 골로새서 1장 13절은 우리가 이러한 사랑하는 아들의 왕국 안으로 옮겨졌다고 말한다. 맏아들이 아버지의 사랑하시는 대상이듯이 그분의 모든 하나님의 아들들도 그분의 사랑하시는 대상이 되었다.
아버지께서 우리를 어둠의 권세에서 구출하셨는데 오늘날 북한은 어둠의 권세의 대표적인 국가라고 할 수 있다. 어둠이 있는 곳마다 죽음이 있다. 우리가 주님 외에 좋아하는 어떤 것은 어둠일뿐 아니라 죽음이기도 하다.
전에 내 아들이 미국 텍사스 주를 대표하는 미식 축구 선수였다. 그룹 집회에서 빠져나와 참가한 추구 경기장에서 많은 선수들이 있었지만 내 눈에는 '34'라는 번호가 달린 내 아들만 보였다. 거기서 나는 모든 선수들이 내 아들처럼 되기를 바랬다. 이것은 마치 아버지께서 왕국 안에서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의 아들들이 되기를 바라는 것과 같다.
북한을 위해 기도할 때 우리는 다만 어둠의 권세인 그 정권이 복음전파에 협조하는 정권으로 바뀌기를 바라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기도해야할 것은 북한에 있는 사람들이 사탄에게서 구출되는 것이다.
히브리서 2장 14절은 주님께서 어둠의 권세를 잡은 자 마귀를 십자가에서 멸망시켰다고 말한다. 베드로전서 2장 9절에 따르면 우리는 하나님이 택한 백성이요 왕 같은 제사장 체계이며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다. 우린 이런 말을 친구들에게 또한 지체들에게 말할 필요가 있다.
아버지께서 우리를 그분께서 사랑하시는 아들의 왕국 안으로 옮겼는데 이 옮김은 일종의 전이(轉移)이다. 만일 내가 한국에 오래 살기 위해 국적을 취득했다고 하자. 내가 위치적으로 한국 국적을 취득했다 할지라도 많은 사람들은 내가 여전히 미국인의 사상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 것이다. 나에게는 내적인 전이가 필요하다. 이를 위해 나는 아침저녁으로 김치를 먹고 한국인의 생활 풍습을 따라 사는 한국인이 되어야 한다.
하나님의 아들은 신성한 생명의 체험과 표현이다. 요한은 그의 서신에서 하나님의 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생명이 있다고 말했다(요일 5:12). 우리는 아들을 소유함으로써 신성한 생명을 소유하게 된다.
우리가 들어간 아들의 왕국은 하나의 영역인데 이 영역은 어떤 장소가 아니라 한 인격 곧 생명이신 아들 자신이다. 그런데 하나님의 왕국에 들어간 사람들이 많은 때 다시 옛날에 있었던 왕국으로 돌아간다. 육체와 자아와 타고난 생명과 세상을 사랑하는 것이 바로 옛날의 왕국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공부를 하루 종일 한 학생이 5시간 게임을 한다면 그것은 어둠의 권세에 머무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주님을 사랑하게 될 때 그 어둠의 권세보다 더 좋은 영역인 아들의 왕국 안에 있기를 좋아하게 된다. 그것이 우리가 있어야 할 사랑의 아들의 왕국이다.
이 왕국 안에는 두려움이 없고 사랑만이 있다. 내가 내 딸의 중간 이름을 도라라고 지었을 때 사탄은 나를 두렵게 하였다. 도라(Dora)라는 이름은 원래 장님이었던 도라 유(Dora Yu)의 이야기에서 유래한다. 그 자매가 주님께 눈을 뜨게 해달다고 구했는데, 눈이 떠짐으로 세상을 보게 되자 주님께 다시 눈을 감겨 달라는 이야기가 담겨 있다. 사탄은 나에게 "네 딸도 눈이 멀 수 있다."는 두려움을 주었다. 나는 사랑의 아들의 왕국 안에 있기 때문에 그러한 두려움을 거절했다. 이 왕국은 두려움이 없고 사랑이 가득하다.
히브리서 12장 6절은 하나님이 사랑하는 자들을 징계한다고 말한다. 그분은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또한 징계하신다. 만일 내가 내 아들이 게임만 한다면 그 다음날 아들 방에 컴퓨터가 사라질 것이다. 그것은 아들에 대한 사랑의 증계이다. 시간이 지날 때 아들은 아버지의 그러한 징계가 사랑인 것을 알게 된다. 이러한 징계 안에 기쁨과 화평과 사람과 빛이 있다. 내가 열아홉 살 때 마음이 주님 앞에 힘든 적이 있었다. 그것은 내가 사랑하는 여자가 있었기 때문인데 지금 돌이켜보면 그녀와의 관계를 끊어지게 한 것은 하나님이 하신 것이다. 돌이켜 볼 때 그녀와 결혼하지 않은 것에 감사드린다.
하늘에 속한 다스림과 제한 아래서, 우리는 사랑 안에서 생명을 가지고 빛 안에서 참된 자유를 갖는다. 이러한 사랑하시는 아들의 왕국 안에서 하나님의 뜻이 수행된다.
하나님의 왕국은 아버지의 사랑하시는 아들의 왕국인데 여기서 우리는 아들과 아버지의 관계가 어떤지 볼 필요가 있다. 신약에서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는 사람의 상상을 초월한다.
마태복음 3장에서 예수님이 침례 받으실 때 하늘에서 "그는 나의 사랑하는 아들이요 기뻐하는 아들이라."(17절)라고 말했고, 17장의 변화산에서 베드로는 주님을 위하여 장막 셋을 짖으려고 할 때 하늘에서 예수만이 그분의 사랑하는 아들이요 기뻐하는 아들이라고 말했다(5절). 골로새서 1장 13절은 우리가 이러한 사랑하는 아들의 왕국 안으로 옮겨졌다고 말한다. 맏아들이 아버지의 사랑하시는 대상이듯이 그분의 모든 하나님의 아들들도 그분의 사랑하시는 대상이 되었다.
아버지께서 우리를 어둠의 권세에서 구출하셨는데 오늘날 북한은 어둠의 권세의 대표적인 국가라고 할 수 있다. 어둠이 있는 곳마다 죽음이 있다. 우리가 주님 외에 좋아하는 어떤 것은 어둠일뿐 아니라 죽음이기도 하다.
전에 내 아들이 미국 텍사스 주를 대표하는 미식 축구 선수였다. 그룹 집회에서 빠져나와 참가한 추구 경기장에서 많은 선수들이 있었지만 내 눈에는 '34'라는 번호가 달린 내 아들만 보였다. 거기서 나는 모든 선수들이 내 아들처럼 되기를 바랬다. 이것은 마치 아버지께서 왕국 안에서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의 아들들이 되기를 바라는 것과 같다.
북한을 위해 기도할 때 우리는 다만 어둠의 권세인 그 정권이 복음전파에 협조하는 정권으로 바뀌기를 바라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기도해야할 것은 북한에 있는 사람들이 사탄에게서 구출되는 것이다.
히브리서 2장 14절은 주님께서 어둠의 권세를 잡은 자 마귀를 십자가에서 멸망시켰다고 말한다. 베드로전서 2장 9절에 따르면 우리는 하나님이 택한 백성이요 왕 같은 제사장 체계이며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다. 우린 이런 말을 친구들에게 또한 지체들에게 말할 필요가 있다.
아버지께서 우리를 그분께서 사랑하시는 아들의 왕국 안으로 옮겼는데 이 옮김은 일종의 전이(轉移)이다. 만일 내가 한국에 오래 살기 위해 국적을 취득했다고 하자. 내가 위치적으로 한국 국적을 취득했다 할지라도 많은 사람들은 내가 여전히 미국인의 사상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 것이다. 나에게는 내적인 전이가 필요하다. 이를 위해 나는 아침저녁으로 김치를 먹고 한국인의 생활 풍습을 따라 사는 한국인이 되어야 한다.
하나님의 아들은 신성한 생명의 체험과 표현이다. 요한은 그의 서신에서 하나님의 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생명이 있다고 말했다(요일 5:12). 우리는 아들을 소유함으로써 신성한 생명을 소유하게 된다.
우리가 들어간 아들의 왕국은 하나의 영역인데 이 영역은 어떤 장소가 아니라 한 인격 곧 생명이신 아들 자신이다. 그런데 하나님의 왕국에 들어간 사람들이 많은 때 다시 옛날에 있었던 왕국으로 돌아간다. 육체와 자아와 타고난 생명과 세상을 사랑하는 것이 바로 옛날의 왕국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공부를 하루 종일 한 학생이 5시간 게임을 한다면 그것은 어둠의 권세에 머무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주님을 사랑하게 될 때 그 어둠의 권세보다 더 좋은 영역인 아들의 왕국 안에 있기를 좋아하게 된다. 그것이 우리가 있어야 할 사랑의 아들의 왕국이다.
이 왕국 안에는 두려움이 없고 사랑만이 있다. 내가 내 딸의 중간 이름을 도라라고 지었을 때 사탄은 나를 두렵게 하였다. 도라(Dora)라는 이름은 원래 장님이었던 도라 유(Dora Yu)의 이야기에서 유래한다. 그 자매가 주님께 눈을 뜨게 해달다고 구했는데, 눈이 떠짐으로 세상을 보게 되자 주님께 다시 눈을 감겨 달라는 이야기가 담겨 있다. 사탄은 나에게 "네 딸도 눈이 멀 수 있다."는 두려움을 주었다. 나는 사랑의 아들의 왕국 안에 있기 때문에 그러한 두려움을 거절했다. 이 왕국은 두려움이 없고 사랑이 가득하다.
히브리서 12장 6절은 하나님이 사랑하는 자들을 징계한다고 말한다. 그분은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또한 징계하신다. 만일 내가 내 아들이 게임만 한다면 그 다음날 아들 방에 컴퓨터가 사라질 것이다. 그것은 아들에 대한 사랑의 증계이다. 시간이 지날 때 아들은 아버지의 그러한 징계가 사랑인 것을 알게 된다. 이러한 징계 안에 기쁨과 화평과 사람과 빛이 있다. 내가 열아홉 살 때 마음이 주님 앞에 힘든 적이 있었다. 그것은 내가 사랑하는 여자가 있었기 때문인데 지금 돌이켜보면 그녀와의 관계를 끊어지게 한 것은 하나님이 하신 것이다. 돌이켜 볼 때 그녀와 결혼하지 않은 것에 감사드린다.
하늘에 속한 다스림과 제한 아래서, 우리는 사랑 안에서 생명을 가지고 빛 안에서 참된 자유를 갖는다. 이러한 사랑하시는 아들의 왕국 안에서 하나님의 뜻이 수행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