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6.13. 성경의 중점 진리(4) 36장-하나님의 선택과 미리 정하심
성남교회
목요자매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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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6.14 13:49
[강진구br]
"인간은 어차피 세상에 던져진 존재"라고 말한 하이데거의 말에 따르면 모든 물건은 다 그 나름대로의 목적이 있지만 인간은 어떤 목적이 없는 무의미한 존재라는 인상을 준다. 그러나 이와 달리 성경은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목적을 계시한다. 하나님의 선택과 미리 정하심이 그것을 말해준다.
우리가 여기 집회에 앉아 있는 것은 우리가 남보다 좋아서가 아니다. 그것은 하나님 없이 살았던 우리를 그분께서 방문하고 선택해주셨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아무것도 자랑할 것이 없다. 우리가 현재의 우리가 된 것은 선택을 잘 해서 그렇게 된 것이 아니라 전적으로 하나님의 긍휼이다.
제 자신을 돌이켜 볼 때, 제가 어머니의 기쁨이 되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은 하나님의 아들이고, 또한 우리가 그분의 아들의 복사판이 되는 것이다.
허나님의 선택의 목적은 우리가 거룩하게 되는 것에 있고, 그분의 미리 정하심은 다만 우리의 거듭남이 아닌 우리가 아들의 자격을 얻는 데 있다.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목적에 이르기 위해 우리는
1. 영원한 생명을 얻어야 하고(요 3:16)
2. 아들과 같은 형상을 이루어야 하며(롬 8:29)
3. 아들의 자격을 가져야 하며(영만 아니라 혼, 몸까지 아들의 자격을 가짐)
4. 주님이 오실 때 우리의 비천한 몸이 변형되어야 한다.
[이상조br]
하나님의 선택은 창세 전, 시간이 존재하기 전에 이루어졌다(엡 1:4).
로마서 9장 23절은 하나님이 우리를 긍휼의 그릇으로 선택하셨다고 말하고, 사도행전 13장 48절은 우리가 영원한 생명을 얻도록 정해진 사람이라고 말한다. 만일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선택과 미리 정하심에 달렸다면 아마 어떤 사람은 우리가 복음을 전할 필요가 있겠느냐고 말할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의 선택과 미리 정하심에 대해 무디는 이런 비유를 들었다.
"영국의 한 사거리의 어느 건물 입구에 '군인들의 모임입니다. 입장권 없이는 들어오지 못합니다.'라는 팻말이 붙여 있었습니다. " 그 다음 연이은 건물마다 동일하게 입장권이 없이는 들어갈 수 없다는 팻말이 붙여 있었다. 그런데 마지막 건물 입구에는 다른 팻말이 붙여 있었다. "원하는 사람은 누구나 들어오십시오. 입장권이 필요 없습니다."
계시록 22장 11절은 "목마른 사람은 오십시오. 원하는 사람은 다 생명수를 거저 받아 마시십시오.” 라고 말한다.
하나님은 우리가 생명수를 마시도록 정하셨지만 또한 우리의 원함이 있어야 한다. 우리가 그분께 원함을 표하고 구원을 받을 때 곧 그분이 창세 전에 우리를 선택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자신이 선택받지 않았다고 생각하여 구원받는 것에 대해 포기한다. 그러나 누가복음 14장 21절은 큰 잔치에 가난한 사람들과 팔다리 못쓰는 이들과 눈먼 이들과 다리 저는 이들을 다 오게 하였는데도 아직도 자리가 남았다고 말한다. 이것은 구원의 문이 모든 사람에게 여전히 열려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 출애굽기 라이프 스터디 21에 의하면 하나님이 바로의 마음을 강퍅케 했다고 말하고 또 다른 면에서는 바로가 스스로 자신의 마음을 강퍅케 하였다고 말한다. 하나님이 바로의 마음을 강퍅케 한 것인가 바로가 스스로 자신의 마음을 강퍅케 한 것인가? 우리는 하나님의 주권이 우리의 자유의지와 모순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사실 바로의 마음이 강퍅케 된 것은 그가 스스로 강팍케 하였기 때문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선택과 미리 정하심에 대해 강퍅한 마음을 갖지 말고, 겸손해야 한다.
[권선배br]
하나님의 미리 아심, 그분의 선택과 미리 정하심은 창세 전에 이루어진 것이다. 이 모든 것에 대해 우리가 할 일은 다만 찬양하고 감사하는 것이다.
옛날에 과거시험을 볼 때 그 시험에 합격여부는 왕이 정했다고 한다. 우리의 구원에 대해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미리 선택하고 정하셨고, 시간 안에 그분은 그것들이 이루어지길 기다리신다.
하나님의 선택이 창세 전, 곧 시간이 있기 전에 이루어졌다는 것은 하나님의 창조의 목적이 우리를 위한 것임을 말해준다. 하나님만이 아니라 우리도 이 우주의 주인이 되었다.
하나님의 선택과 미리 정하심은 우리를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려는 것인데 이것이 이루어지는 영역은 '그리스도 안'이다. 오늘날 한국은 복지국가이지만 북에는 이러한 복지의 혜택을 찾아볼 수 없다. 이것은 그들이 사는 영역이 다르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선택과 미리 정하심은 그리스도 안에서만 효력이 있다. 그리스도라는 영역을 떠나고 그 영역 밖으로 나아갈 때 우리는 그분의 선택과 미리 정하심을 의심하게 된다.
하나님의 선택과 미리 정하심의 근거는 사랑이다. 사랑은 이성으로 설명할 수 없는 것이다. 때로 우리는 잘 생긴 남자가 못 생긴 여자와 결혼하는 것을 본다. 그것은 전적으로 사랑 때문이다. 하나님이 못난 우리를 선택하신 것 역시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선택과 미리 정하심의 또 다른 조건은 그분의 긍휼과 은혜이다. 우리는 그분의 긍휼과 은혜를 적용하는 것을 배워야 한다. 사실 우리가 어떤 것을 받을 자격을 갖추었다면 그것은 긍휼이 아니다.
누가복음 14장 12-13절은 잔치를 베풀 때 친구나 형제나 부유한 이웃을 부르지 말고 가난한 이들과 팔다리 못 쓰는 이들과 다리 저는 이들을 초대하라고 말한다. 첫 번째 무리는 초대받은 것에 대해 보답하려고 하지만 두 번째 무리는 갚을 것이 없는 이들이다. 주님은 우리가 갚을 것이 없는 이들을 초대한다면 복이 있고 부활의 때에 상을 받을 것이라고 말한다(14절).
오늘 교회 안에서 갚을 것이 없는 이들은 누구인가? 우리가 잔치에 초대할 사람들은 누구인가? 다음 세대 곧 어린이, 청소년, 대학생들이다. 그들은 갚을 것이 없는 이들이다. 부모에게 받은 이들은 당시에 갚을 것이 없는 이들이다. 그러나 결국 그들은 자녀들에게 갚게 된다. 다음 세대를 식사에 초대하고 공급한다면 복을 받고 주님 오실 때 보상을 받게 될 것이다.
이번 온전케 하는 집회에서 하나님께서 많은 아들들을 원하신다는 것에 대해 말할 때 란 형제님은 자신의 아들의 미식 추구팀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란 형제님은 그 경기에서 자기 아들만 눈에 들어온다고 했다. 그래서 수비를 하든, 공격을 하든 다 아들이 그 역활을 하길 원한다고 했다. 이것은 하나님이 그분의 아들들이 모든 위치(position)에서 그분을 나타내길 원한다는 것의 예시이다. 그렇게 될 때 만물 또한 하나님을 표현하게 된다.
베드로는 그의 서신에서 "더욱 부지런하여 여러분이 부름받은 것과 선택받은 것을 견고하게 하십시오.”(벧후 1:10)라고 말한다. 많은 경우 악한 자는 우리를 걸려 넘어지게 한다. 그 때 만일 우리가 부지런히 그분을 섬긴다면 우리는 걸려 넘어지지 않고 우리의 선택받은 것이 견고하게 될 것이다.
[김광회br]
내 마음의 노래 124장은 영혼을 사랑하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하워드 시가시 형제님이 지은 찬송이다. 오늘 집회소 계단을 내려오면서 하나님의 선택에 대해 다만 감사가 넘쳤다. 하나님의 선택과 미리 정하심에 관해 우린 아무것도 아님을 느낀다. 하나님은
이 우주가 생기기 전에 우리를 좋아하고 우리에 대해 미리 정하신 것이 있다.
어릴 때 나는 사과를 좋아했다. 그래서 이빨이 남보다 빨리 썩었던 것같다. 나는 내가 사과를 잘 고를줄 안다고 생각했지만 한번은 겉으로 좋아 보이는 사과를 샀는데 그 중에 속이 썩은 것이 있었다. 어떤 경우에는 흠이 있어 보이는 것이 오히려 맛이 있었다. 그러므로 우리의 선택은 아니라는 것이다. 우리가 볼 때 기둥 같이 여겨지고 이 자리에서 말씀도 교통했던 형제님인데 어느 날 인터넷에서 엉뚱한 것을 접하여 빗나가는 것을 보았다. 나에게 2명의 손자와 1명의 손녀가 있는데 막내인 손녀딸이 오빠들을 이기려고 한다. 때로 물건을 던지는데 잘못되면 손자가 크게 다칠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 어떤 것도 자랑할 것이 없다.
나는 주님과 교회를 섬기도록 형제자매님들이 재혼하는 일에 부담을 가지고 있지만 그것도 쉽지 않음을 느낀다. 재혼에서 나는 지체들이 자기의 조건을 내세워 선택하길 원치 않는다. 다만 함께 주님과 교회를 섬기는 것이 하다. 우리는 자신을 신뢰하는 것을 내려 놓아야 한다. 오직 그분의 택하심만이 옳은 것이다.
우리는 젊은 이들을 복음과 왕국 안으로 이끌어야 한다. 가난한 이들도 인도해야 한다. 요즘 집회소 주위에서 좀 더 먼 범위로 복음 활동을 하고 있는데, 최근에 74년 생 신체 장애가 있는 아들을 부양하는 70세 어르신을 접하게 되었다. 이들이 바로 갚을 것이 없는 이들이다. 우리는 이런 이들에게도 복음을 전해야 한다.
우리는 복음을 전할 때 똑똑한 이들, 건축 재목들을 얻기를 원한다. 그러나 "못생긴 나무가 산을 지킨다."는 말이 있다. 왜냐하면 잘 생긴 나무들은 다 잘려나갔기 때문이다. 참으로 하나님만이 이시고 우리는 아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선택하시고 구원하시며 우리를 회복된 교회 안에 두신 것에 대해 다만 감사드리며 찬양하자!
마지막으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선택하시고 미리 정하신 것에 대해 간단히 살펴보자.
하나님의 선택과 미리 정하신 그 때는 창세 전이고, 그 영역은 그리스도 안이다. 매일 그리스도가 우리의 삶의 영역이어야 한다. 그리고 그분이 우리를 선택하시고 미리 정하신 그 근거는 그분의 사랑과 은혜와 긍휼이고, 그 목표는 우리가 영원한 생명을 얻고 아들의 자격을 갖는 것이다. 하나님이 선택하시고 미리 정하신 사람들은 갚을 것이 없는 이들이며, 하나님의 선택과 미리 정하심의 증거는 우리의 자유의지와 관련되며, 그 견고함은 그분의 선택이 취소될 수 없다는 것이다. 과거에 외국과의 무역에서 신용장을 발급했다. 그 신용장 우측 상단에 revicable 라고 써 있다면 그것은 취소할 수 있다는 뜻이고, irrevocable이라고 써져 있다면 그 신용장은 취소될 수 없다는 뜻이다. 하나님의 선택과 미리 정하심은 결코 취소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