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6.26. 성경의 중점 진리(4) 38장-그리스도의 인격
성남교회
목요자매집회
0
5749
2019.07.01 14:37
-추구 진도-
〈성경의 중점 진리 4권〉
38장 - 그리스도의 인격
정진석 br
우리는 이번 주와 다음 주에 그리스도의 두 방면 곧 그분의 인격과 피(일)를 교통할 것이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그분이 성취하신 일에 대하여는 알지만 그분의 인격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다. 그분의 인격에 대한 인식이 부족함으로 떡 떼는 집회에서 우리는 그분이 성취하신 일에 대해 많이 찬양하지만 그분의 인격에 대한 찬양이 부족하다.
요한복음 1장 1절은 "태초에 하나님의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이 곧 하나님시니라."라고 말한다. 여기의 '태초'는 창조 이전인 영원 과거를 의미한다. 창조 이전에 하나님은 말씀으로 계셨다. 이 말씀은 하나님의 정의이자 설명이다. 만일 어떤 사람이 여러분과 함께 있는데 말을 안 한다면 그 사람은 비밀스럽다. 그러나 말을 한다면 그 사람 속에 있는 것이 표현된다.
이사야서 9장 6절은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낳고 한 아들이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게 ... 그 이름은 전능하신 하나님이라"고 말한다. 우리는 친구들에게 왜 예수님이 하나님이라는 말을 하지 않는가? 우리가 이런 말을 하면 사람들은 이상히 여긴다. 나는 형제님들과 귀신을 쫓아낸 적이 있는데, 그 귀신이 "예수는 죽었는데 그가 어떻게 날 쫓어낼 수 있는냐?"라고 했다. 사실 예수님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신 분이시다. 그분은 하나님이시다.
요한복음 14:7에서 예수님은 빌립에게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 아버지를 보여달라고 하느냐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느니라."라고 하셨다. 아들은 아버지와 하나이시다. 미가 5:2은 그분의 근본은 상고에 있다고 말한다. 그런 분이 이제 우리가 알고 접촉할 수 있는 하나님이 되셨다. 포도주를 연구만 하고 마셔 보지 않은 사람은 포도주를 체험하지 못한 사람이다. 이와 같이 우리도 다만 그분을 연구 하지 말고 그분을 누리기 원한다. 찬송가에 "우리는 다만 그를 불러 인격 누리네."라고 했다.
고희중br.
영원 과거에 계신 하나님은 스스로 계신 하나님이시고, 말씀으로 계신 하나님이시다. 구약에 그분의 머리카락이 희다고 한 것은 그분이 영원부터 계신 분임을 말하고, 또 그분의 머리카락이 검다고 한 것은 그분의 힘이 변함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창조의 하나님은 육체되심으로 사람이 되셨다. 육체되심으로 예수님은 하나님을 사람 안으로 이끄셨다. 하나님-사람으로서 그분은 이 땅에서 하나님을 표현하셨다. 죽고 부활하심으로 인성을 입으신 사림의 아들의 부분이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되셨다. 그리하여 그분은 맏아들이 되셨다. 그리고 그분의 부활 안에서 우리는 거듭나 썩지 않은 유업을 받게 되었다. 우리는 그분과 함께 죽고 부활하여 하늘에 앉게 되었다(엡 1:9). 그러므로 오늘 우리는 하늘의 분위기 안에 살아야 한다.
또한 그분은 사람의 아들로 다시 오시어 이기는 이들과 함께 천년왕국 안에서 다스릴 것이다. 이들 이기는 이들은 모든 것을 배설물로 여기고 신부로 단장된 이들이다. 그들은 땅에 있는 것이 아닌 위의 것을 생각한다. 주님은 그분의 권위를 가지고 이기는 이들과 함께 땅에 오실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땅의 정부를 사모하지 말아야 한다. 주님은 땅의 모든 것을 겨와 같이 바람에 날려버리실 것이다. 땅에서 우리의 중심은 무엇인가? 우리는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여기고 모든 것을 배설물로 여겨야 한다. 영원 미래에서 그분은 여전히 사람의 아들로 계실 것이다.
권선배br
그리스도의 인격과 일은 우리의 믿음의 근원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러한 주제들을 소중히 여겨야 한다. 옛날에 시골에서 "하나님을 믿으세요?"라고 말하면 사람들은 대부분 "나야 하나님 믿지!"라고 했다. 그러나 "예수님 믿으세요."라고 말하면 사람들은 "왜 서양 사람을 믿어야 하냐?"고 했다. 이것은 그들이 예수님의 인격을 모르기 때문이다.
우리는 미가서 5장 2절에 따라 예수님이 태초부터 계신 하나님인 것을 본다. 요한복음 1장에서 태초에 하나님이 계시고, 말씀이신 이 하나님이 육체가 되신 것은 다만 아들 하나님만 사람이 되어 오신 것이 아닌 아버지와 아들과 그 영 삼일 하나님이 사람이 되어 오신 것이다.
로마서 9:5은 예수님을 만물 위에 영원히 찬양받으실 하나님이라고 말한다. 많은 경우 우린 아들 하나님과 아버지 하나님 사이에 차이를 둔다. 히 1:3은 예수님이 위엄이 있으신 분의 오른편에 앉아 계신다고 말한다. 그분은 영원 과거부터 보좌에 앉아 계셨다. 같은 구절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요 실질의 표현이라고 했다. 여러분은 영광과 광채를 분리할 수 있는가? 해와 해빛은 분리할 수 없다. 그리스도가 없다면 하나님은 결코 표현될 길이 없다. 영원 과거에 말씀이신 분은 하나님의 정의이다. 그분은 하나님과 동등하셨다. 그분은 하나님과 차이가 없었다.
창조에 있어서 요한은 만물이 그분으로 존재하게 되었고, 또 다 그분 안에서 창조되었고, 그분을 통해 창조돠었으며, 또한 그분을 위해 창조되었다. 만물은 어떤 사람이 말하는 것처럼 그냥 생긴 것이 아니다. 또 롬 1:20은 그분의 창조물 안에 그분의 능력과 신성한 특성이 나타나 있다고 말한다. 하나님이 그분의 손가락으로 만물을 창조하셨다는 말이 있다. 그러므로 만일 우리가 이 우주가 충돌할 것이라고 걱정한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능력을 알지 못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육체가 되셨는데, 이 육체되심은 하나님의 나타나심이고 그 목적은 하나님을 사람 안에 분배하기 위한 것이다. 구약에서 하나님은 빽빽한 구름과 천둥 가운데에서 나타나셨다. 이것은 우리를 두렵게 한다. 그러나 신약에서 그분은 우리가 다가갈 수 있는 한 사람으로 오셨다.
그럴지라도 제자들은 그분이 누군지 몰랐다. 그런데 요한은 우리가 태초부터 있는 생명의 말씀을 듣고 만졌다고 말한다. 이것은 구약과 전혀 다른 그분의 나타남이다.
나의 아버지는 강하고 카리스마가 있었지만 모두가 가까이 하기 어려운 분이셨다. 그러나 어느 날 나의 부친이 날 위해 울며 기도하신 것을 목격하고 나는 아버지와 매우 가까워졌다. 사실 자녀를 강하게 키우면 자녀는 아버지와 거리를 두게 된다. 또한 집에서 부모와 편하게 지내는 아이가 학교에서도 말썽을 피우지 않는다.
사람들은 예수님을 구주, 주, 창조주라고 전파하는 것을 좋아하지만, 바울은 예수님을 우리의 생명, 소망, 신랑라고 전했다. 창조주는 우리에게 너무 멀리 계신 분이시다. 우리는 예수님을 일상생활에 적용하는 분으로 전파해야 한다. 그렇다고 우린 결코 범신론자가 아니다. 유리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모든 긍정적인 것의 실재임을 말하는 것이다.
마태복음 16장에서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 하느냐?"고 묻자. 혹은 엘리야, 혹은 예례미야라 했다. 거기서 베드로는 "주는 그리스도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했다. 이것은 아버지께서 베드로에게 계시하신 것이다. 만일 우리가 모든 것이 신이라 하는 범신론자라면 우리는 예수님을 욕되게 하는 것이다. 우리가 믿는 예수 그리스도는 무한하신 분이시다.
김광회br
사람과 하나님과의 연합은 위대한 경건의 비밀이다. 이것은 우리가 신격에서는 아니지만 생명과 본성과 표현에서 하나님과 똑같이 되는 것이다. 위대한 비밀이 사람을 신격에서는 아니지만 생명, 본성, 표현에서 하나님이 되게 하는 것이 아니라면 이것을 어찌 그분의 경륜이라 하겠는가?
한번은 리 형제님이 미국의 어느 집회에서 자신이 장난감인 예언를 관심하는데에서 그리스도에게로 관심이 바뀌었다고 간증한 적이 있었다. 주의 회복 안에서 우리는 그리스도 한 분만을 강조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우리의 추구와 모임은 아무 의미가 없는 것이다. 오히려 우리는 세상으로 가서 누림을 갖는 것이 낫다. 우리가 모든 것을 하는 목표는 그리스도를 얻고 확대하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인격에 대해 리 형제님은 하나님의
신약 경륜 메시지 42에서 많은 항목들을 다루었다.
영원 과거에 하나님은 말씀으로 계셨다. 이순신, 재갈공명도 하나님을 믿었지만 그들은 육체를 입고 오신 예수님이 하나님이라는 것을 믿지 않는다. 그러므로 인류의 유일한 죄는 바로 불신이다.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달린 강도, 다섯 남편을 둔 사마리아 여인이 좋지 않았지만 예수님이 하나님이심을 믿었다.
창조에 있어서 요한은 그분이 없이 창조된 것이 하나도 없다고 말했다. 그분이 자기 땅에 오매 사람들이 그분을 믿지 않았다고 했다. 그러나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다고 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길은 주님의 이름을 부름으로 그분을 생명으로 영접하는 것이다. 나는 주님의 이름을 부름으로 과거 나의 나쁜 습성들이 고쳐졌다고 간증할 수 있다.
사복음서에 하나님이 육체를 입고 오신 분은 하나님-사람이시다. 갈릴리 호수에서 풍랑이 일어날 때 제자들이 예수님을 깨웠다. 잠드셨던 예수님은 일어나 " 잠잠하라"고 하시며 바람을 꾸짖으셨다.
우리가 믿는 예수님은 영광스런 분이시다. 영원 과거에서 영원 미래까지 시간이라는 다리에 예수님의 일곱 단계가 있다. 먼저 육체되심은 하나님을 나타내셨고, 인생을 사심으로 하나님과 연합되셨으며, 십자가에서 칠중 신분으로 죄,죄들, 육체, 옛 사람 등을 처리하시고, 죽고 부활하심으로 생명 주시는 영이 되셨다. 우리가 주의 이름을 부를 때 그 영은 우리 안에서 그분이 이루신 것을 우리에게 적용되게 하시고, 그분의 형상과 같은 형상을 이루게 하신다. 부활하신 그리스도는 지금 승천 안에서 만왕의 왕으로 계신다. 우리가 어디로 이사가고 누구를 만나는 것은 다 그분의 주권 아래 있다. 또한 그분은 우리의 약함을 아버지께 고하시고, 우리를 위해 중보기도하신다.
마지막으로 예수님은 신랑으로 다시 오실 것이다. 이를 위해 우리는 등 안에 성령을 채워야 할 뿐 아니라 여분의 기름인 성령을 그릇인 우리 혼 안에 채워야 한다. 우리는 은행에 많은 돈을 저축하려고 하지 말고 그분의 음성에 귀기리며 기름을 혼 저장해야 한다. 또한 복음을 전하고, 믿는 이들을 돌보야 한다. 지나가는 우리 인생에 믿는 이들을 돌본다면 그들이 장래 우리의 보상이 될 것이다.
천년 왕국이란 무엇인가? 천년을 드려서 앞에서 말한 그러한 삶을 살지 않은 사람을 그렇게 살게 만드는 것이다. 또한 우리에게 영원 미래가 있다. 그분에게 수 천년이 몇일이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