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차 성남교회 청년직장인 온전케하는 집회_메시지6
박기천
청년직장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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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6.01 08:29
5월 30일 6차 성남교회 청년직장인 온전케하는 집회가 진행되었습니다.
그리스도가 우리 마음 안에 그분의 집을 만드시도록 허락해 드림
(엡2:15) 규례들로 된 계명의 율법을 자기 육체 안에서 없애 버리셨습니다. 이것은 이 둘을 그분 자신 안에서 한 새사람으로 창조하시어 화평을 이루시려는 것이며,
(엡3:17) 믿음을 통하여 그리스도께서 여러분의 마음에 거처를 정하시게 하시며,
에베소서 3장이 없다면 2장은 우리에게 단지 교리에 불과할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유대인들과 이방인들을 한 새 사람으로 창조하기 위해 규례들을 폐하신 것은 하나의 사실이다. 그러나 이것이 우리 매일의 체험에서 실지가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그리스도가 우리 마음 안에 그분의 집을 만드시도록 허락해 드려야 한다. 당신이 여전히 규례들을 갖고 있는지의 여부를 알아보는 한 가지 방법은 그리스도가 그분의 집을 당신의 마음 안에 만들고 계시는지의 여부를 점검해 보는 것이다. 당신은 그분의 집을 당신의 마음 안에 만드시도록 그분께 허락해 드리고 있는가? 만일 우리가 정직하다면 우리 대부분은 그분이 이것을 행하시도록 많은 기회를 드리지 않고 있다고 말해야만 할 것이다. 그 이유는 우리가 먼저 그리스도를 주의하지 않고 우리 자신의 방법을 주의하기 때문이다... 우리 마음은 자아의 거처가 아닌 그리스도의 거처이어야 한다. 다시 묻건대, 당신 속에서 사는 인격은 누구인가? 당신인가 아니면 그리스도인가? 이 문제에 있어서 나는 교리를 주의하지 않는다. 나는 오로지 실제만을 주의한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로 하여금 또 다른 종류의 규례들을 갖도록 규례들을 폐하신 것이 아니다. 그분의 의도는 우리의 마음 안에 그분의 집을 만드시는 것이다...하나님은 우리가 남편에게 순종하거나 아내를 사랑하기 위해서 종교적인 방법으로 노력하는 것을 원치 않으신다. 그분의 관심은 우리가 그리스도를 우리의 인격으로 삼고 모든 규례들은 제쳐놓는 것이다. 하나님은 그들의 마음 안에 그리스도가 그분의 거처를 만들고 계시는 한 무리의 사람을 원하신다. 이것이 오늘날 교회 생활 안에서 우리의 필요이다.
-에베소서 라이프스터디 78 메시지 중 발췌-
(빌1:19) 왜냐하면 여러분의 간구와 예수 그리스도의 영의 넘치는 공급으로, 이러한 일이 결국에는 나를 구원에 이르게 할 것을 나는 알기 때문입니다.
(빌1:20) 나의 간절한 기대와 소망은 어떤 일에서도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고, 항상 그러하였듯이 지금도 매사에 담대하여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께서 확대되시도록 하는 것입니다.
(빌1:21) 왜냐하면 나에게 있어서 삶은 그리스도이고, 나에게 있어서 죽음은 유익이기 때문입니다.
빌립보서는 그리스도를 체험함에 관한 것이다. 어떤 환경에서 그리스도를 확대하는 것은 그리스도를 최상의 누림으로 체험하는 것이다...항상 그렇지는 않더라도 최소한 밤 동안은 바울은 간수에게 묶여 있었다. 그의 몸은 쇠사슬에 묶여 있었지만 그리스도가 그의 몸 안에서 확대되게 했다. 이것은 상황이 어떠하든지 바울은 그의 안에서 그리스도가 확대되기를 기대했음을 가리킨다...바울은 다른 사람들의 눈앞에서, 특히 감옥에서 그를 지키는 자들의 눈앞에서 그리스도를 크게 했다. 그 결과로 몇 명이 그리스도께로 돌아왔다. 우리의 일상 생활에서 우리 또한 그리스도를 확대하고 다른 사람들의 눈에 크게 해야 한다. 당신이 일하는 곳이나 다니는 학교에서, 사람들이 그리스도를 멸시할지 모른다. 그들은 십계명의 세 번째 계명을 범하여 주님을 조롱하고 주님의 이름을 훼방할지 모른다. 그러므로 당신은 다른 사람들로 하여금 그리스도를 그렇게 작게 보지 않고 확대하여 크게 보게 할 필요가 있다. 우리는 또한 가정에서 그를 확대해야 한다. 어떤 젊은 청년들의 부모님은 그리스도를 믿지 않고 오히려 멸시할지 모른다. 그럴 때 이러한 젊은 청년들은 그들의 부모님들 앞에서 그리스도를 확대케 할 책임을 져야 한다. 그들의 부모님에게 단순히 복음을 전하는 대신, 그분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 우리는 안에 생명이 필요할 뿐 아니라 밖으로 생활이 필요하다. 합당하게 그리스도를 살 때 그리스도가 다른 사람들의 눈에 크게 나타날 것이다. 젊은 청년들이여, 당신의 부모님으로 하여금 당신 안에 있는 그리스도의 위대하심을 보게 하라. 우리는 그리스도에 대해 말할 자유를 갖지 못하거나 자유가 거의 없는 상황에서도 그리스도를 확대할 수 있다. 선생님들이 학생들에게 복음을 전하지 못하게 하더라도 학생들은 교실에서 그리스도를 확대할 수 있다. 그들은 학생들의 눈에 그리스도를 크게 나타나도록 할 수 있다. 나는 바울이 감옥에 있었을 때 그리스도를 전하는 데 많은 자유가 있었으리라고 믿지 않는다. 반대로 바울은 매우 제한되어 있었고 엄한 통제 아래 있었다. 그러나 그와 같은 환경 속에서도 그리스도는 그의 몸에서 확대되었다. 바울은 온전히 담대하여 항상 그리스도를 확대하기를 원했다.
-빌립보서 라이프스터디 6 메시지 중 발췌-
우리의 일상생활에서 그리스도께서 우리 마음에 거처를 정하시도록 허락해 드리기 원합니다. 어떠한 환경 가운데서도 그리스도를 최상으로 누림으로써 그리스도께서 확대되시기를 갈망합니다. 아멘
그리스도가 우리 마음 안에 그분의 집을 만드시도록 허락해 드림
(엡2:15) 규례들로 된 계명의 율법을 자기 육체 안에서 없애 버리셨습니다. 이것은 이 둘을 그분 자신 안에서 한 새사람으로 창조하시어 화평을 이루시려는 것이며,
(엡3:17) 믿음을 통하여 그리스도께서 여러분의 마음에 거처를 정하시게 하시며,
에베소서 3장이 없다면 2장은 우리에게 단지 교리에 불과할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유대인들과 이방인들을 한 새 사람으로 창조하기 위해 규례들을 폐하신 것은 하나의 사실이다. 그러나 이것이 우리 매일의 체험에서 실지가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그리스도가 우리 마음 안에 그분의 집을 만드시도록 허락해 드려야 한다. 당신이 여전히 규례들을 갖고 있는지의 여부를 알아보는 한 가지 방법은 그리스도가 그분의 집을 당신의 마음 안에 만들고 계시는지의 여부를 점검해 보는 것이다. 당신은 그분의 집을 당신의 마음 안에 만드시도록 그분께 허락해 드리고 있는가? 만일 우리가 정직하다면 우리 대부분은 그분이 이것을 행하시도록 많은 기회를 드리지 않고 있다고 말해야만 할 것이다. 그 이유는 우리가 먼저 그리스도를 주의하지 않고 우리 자신의 방법을 주의하기 때문이다... 우리 마음은 자아의 거처가 아닌 그리스도의 거처이어야 한다. 다시 묻건대, 당신 속에서 사는 인격은 누구인가? 당신인가 아니면 그리스도인가? 이 문제에 있어서 나는 교리를 주의하지 않는다. 나는 오로지 실제만을 주의한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로 하여금 또 다른 종류의 규례들을 갖도록 규례들을 폐하신 것이 아니다. 그분의 의도는 우리의 마음 안에 그분의 집을 만드시는 것이다...하나님은 우리가 남편에게 순종하거나 아내를 사랑하기 위해서 종교적인 방법으로 노력하는 것을 원치 않으신다. 그분의 관심은 우리가 그리스도를 우리의 인격으로 삼고 모든 규례들은 제쳐놓는 것이다. 하나님은 그들의 마음 안에 그리스도가 그분의 거처를 만들고 계시는 한 무리의 사람을 원하신다. 이것이 오늘날 교회 생활 안에서 우리의 필요이다.
-에베소서 라이프스터디 78 메시지 중 발췌-
(빌1:19) 왜냐하면 여러분의 간구와 예수 그리스도의 영의 넘치는 공급으로, 이러한 일이 결국에는 나를 구원에 이르게 할 것을 나는 알기 때문입니다.
(빌1:20) 나의 간절한 기대와 소망은 어떤 일에서도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고, 항상 그러하였듯이 지금도 매사에 담대하여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께서 확대되시도록 하는 것입니다.
(빌1:21) 왜냐하면 나에게 있어서 삶은 그리스도이고, 나에게 있어서 죽음은 유익이기 때문입니다.
빌립보서는 그리스도를 체험함에 관한 것이다. 어떤 환경에서 그리스도를 확대하는 것은 그리스도를 최상의 누림으로 체험하는 것이다...항상 그렇지는 않더라도 최소한 밤 동안은 바울은 간수에게 묶여 있었다. 그의 몸은 쇠사슬에 묶여 있었지만 그리스도가 그의 몸 안에서 확대되게 했다. 이것은 상황이 어떠하든지 바울은 그의 안에서 그리스도가 확대되기를 기대했음을 가리킨다...바울은 다른 사람들의 눈앞에서, 특히 감옥에서 그를 지키는 자들의 눈앞에서 그리스도를 크게 했다. 그 결과로 몇 명이 그리스도께로 돌아왔다. 우리의 일상 생활에서 우리 또한 그리스도를 확대하고 다른 사람들의 눈에 크게 해야 한다. 당신이 일하는 곳이나 다니는 학교에서, 사람들이 그리스도를 멸시할지 모른다. 그들은 십계명의 세 번째 계명을 범하여 주님을 조롱하고 주님의 이름을 훼방할지 모른다. 그러므로 당신은 다른 사람들로 하여금 그리스도를 그렇게 작게 보지 않고 확대하여 크게 보게 할 필요가 있다. 우리는 또한 가정에서 그를 확대해야 한다. 어떤 젊은 청년들의 부모님은 그리스도를 믿지 않고 오히려 멸시할지 모른다. 그럴 때 이러한 젊은 청년들은 그들의 부모님들 앞에서 그리스도를 확대케 할 책임을 져야 한다. 그들의 부모님에게 단순히 복음을 전하는 대신, 그분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 우리는 안에 생명이 필요할 뿐 아니라 밖으로 생활이 필요하다. 합당하게 그리스도를 살 때 그리스도가 다른 사람들의 눈에 크게 나타날 것이다. 젊은 청년들이여, 당신의 부모님으로 하여금 당신 안에 있는 그리스도의 위대하심을 보게 하라. 우리는 그리스도에 대해 말할 자유를 갖지 못하거나 자유가 거의 없는 상황에서도 그리스도를 확대할 수 있다. 선생님들이 학생들에게 복음을 전하지 못하게 하더라도 학생들은 교실에서 그리스도를 확대할 수 있다. 그들은 학생들의 눈에 그리스도를 크게 나타나도록 할 수 있다. 나는 바울이 감옥에 있었을 때 그리스도를 전하는 데 많은 자유가 있었으리라고 믿지 않는다. 반대로 바울은 매우 제한되어 있었고 엄한 통제 아래 있었다. 그러나 그와 같은 환경 속에서도 그리스도는 그의 몸에서 확대되었다. 바울은 온전히 담대하여 항상 그리스도를 확대하기를 원했다.
-빌립보서 라이프스터디 6 메시지 중 발췌-
우리의 일상생활에서 그리스도께서 우리 마음에 거처를 정하시도록 허락해 드리기 원합니다. 어떠한 환경 가운데서도 그리스도를 최상으로 누림으로써 그리스도께서 확대되시기를 갈망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