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 내가 손을 놓아도 여전히 붙잡고 계신 주님

성도간증

성도들의 간증

24 내가 손을 놓아도 여전히 붙잡고 계신 주님

청지기 1 1886
어린 시절, 열악한 가정 형편으로 친척집에 살아야 했던 유년기를 지나 20 차례 온 지방을 유랑하듯 이사를 하면서 친구도 친척도 어느 누구 의지할 곳 없던 어린 저의 한 가지 기도 제목은 한 곳에 머물기를 바라는 소망이었습니다.

 중학생이 되면서 한 지방의 성서침례회 개척교회 목사님을 만나 정착하게 되어 목사님과 함께 동고동락하게 되면서 예수님을 영접하게 되었고 의지하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천국에 들어가고 믿지 않으면 지옥에 떨어진다!" 너무 간단한 진리가 맹목적으로 저의 청소년 시절을 지배했습니다. 두꺼운 성경책을 들고 등교하기에 당당했고 쉬는 시간마다 역사 속에서 성취된 성경의 계시와 예언을 이야기하는 즐거움으로 학교 생활을 하여 학년에 10여명을 전도하는 성취감과 만족감에 날이 갈수록 스스로 "목사"가 되어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 만족감은 그리 오래지 않아 많은 의문과 갈증으로 바뀌게 되었습니다. 해가 지날수록 목사님의 설교는 동일하게 들리기 시작했습니다. 진부하고 반복적인 설교로 인해 성경읽기 모임과 부흥회를 찾아 해매이게 되었습니다. 성경을 읽으면 읽을 수록 깊은 속에서 말씀하시는 말씀은 더 혼돈스럽게 들려 깊은 수렁에 빠지게 되어 인생의 중대한 기도를 하게 되었습니다. "주님, 하나님의 말씀하심을 듣고 싶습니다. 성경의 말씀을 직접 듣고 싶습니다".
 
 어느날 진지한 신앙 상담을 통해서 '깊은 속에서의 음성이 '자아'의 음성이지 주님의 음성이 아니다'. 라는 대답은 '과연 하나님은 살아 계시는가?' 라는 의문으로 귀결하게 되었고 그 어린 시절을 지배했던 맹목적인 신앙마저 허사처럼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어느 깊은 밤, 밝게 떠오른 달을 바라보며 "하나님! 진짜 살아계신가요?" ... 오랜 시간동안 하늘을 쳐다보는 중에 그동안 작은 일들에도 간섭하며 들리던 '자아'의 말들이 아무런 반응도 응답도 없이 고요하였습니다. "아- 맞구나. 이건 내 안에 내가 하는 말이었구나". 이 때는 고2 시절 일생일대 가장 심각한 시점에 이르렀습니다.

 스스로 찾아 악행을 일삼기 시작했으며 그 누구도 컨트롤 할 수 없을 정도로 타락의 길로 빠져들어가 세상의 악의 구렁텅이에 빠져 자신만으로 사는 강한 자아로 '썬데이 크리스챤들'을 맹렬히 비판하며 '하나님 없는 삶이 오히려 더 편하다'라는 궤변으로 타락을 전염했습니다. 
 
 "오! 주예수님! 주님을 사랑합니다." 청소년 시절을 회상할 때 이 아이는 누구였던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나  작음 신음과 기도를 잊지 않으시는 주님. 주님의 긍휼로 성경의 헬라어 원문을 가장 쉽고 정확하게 번역한 '회복역 성경'과 입을 열어 하나님의 갈망과 부담을 전달하는 전달자와, 레마의 말씀을 선포하는 신언자와 주님이 가신 길을 묵묵히 따르는 살아있는 본인 인도자들이 있는 교회 생활 안에 있게 되었습니다. 우리의 기도에 응답하시며 우리의 한숨을 잊지 않으시는 주 예수님! 할렐루야!

 광활한 바다에서 고무튜브에 목숨을 부지하는 구원이 아닌 배 위로 완전히 구원받아 떠내려가는 흐름을 거슬러 나아가는 교회생활로 이끄셨습니다. 우리에게 가야하며 항해해야 할 목표가 있고 도착지점이 있습니다. 더 이상 지난 날에 머물고 회상하거나 다시 바다로 뛰어드는 시간 낭비를 할 수 없습니다. 직접! 온전하게 하시고, 견고하게 하시며, 강하게 하시고, 터를 튼튼하게 하시는 은혜의 하나님!  '잠시 동안의 고난'에 주시하지 않습니다. "은혜 중에 은혜를 부어주시는 하나님"을 주목함으로 새 예루살렘을 향하여 온 존재를 다시 한 번 열어드립니다! 아멘!(Pillar kim)
1 Comments
고광환 2023.04.11 10:40  
형제님.
그리스도를 누릴 수 있는 좋은 터안에서 , 하나님의 경륜에 따라 푯대를 향해 달려갑시다.
 이기는 자가 되고, 그리스도의 신부로 조성되기 원합니다.